【 성관음(聖觀音)보살 】
성관음(聖觀音)은 가장 원형적인 관세음보살이다.
이 관음은 관음신앙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
후세에 성립된 다른 변화 관음과 구별하기 위하여 성이라는 말을 덧붙인 것이다.
어느 때에나 33신을 자유자재로 나타내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관음으로
신라의 원효 대사와 의상 대사가 친견한 이래 이땅의 불자들이
가장 널리 믿고 받드는 신앙 대상이 되어 왔다.
자연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중국.일본과는 달리
성관음상을 특별히 많이 모시게 되었고 그냥 관세음보살 이라고 할 때는
이 성관음을 뜻하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다.
우리 불자들이 어느 사찰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성관음보살상과
성관음탱화 그 모습을 면밀히 살펴보자
1, 성관음(聖觀音)보살
먼저 성관음보살의 지물을 살펴보자
왼손에는 봉우리 상태의 연꽃을 들고 있고 오른손에는 감로병을 들고 있다.
왼손에 든 연꽃은 모든 중생이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불성을 상징한다.
그 꽃이 활짝 피어 있다면 불성이 온전하게 드러나서 성불하였음을
시사하는 것이지만 봉오리 상태의 연꽃은 우리 중생들 모두가 아직은
개발되지 않은 상태의 불성을 그냥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봉오리 상태의 연꽃을 들어 보이면서 우리에게 설법하신다.
"중생들이여,부디 성불을 개발하여라.
진흙탕 속에서도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 이 연꽃처럼 너희들에게는
어떠한 번뇌에도 오염되지 않는 청정한 불성이 있다.
그 불성을 개발하라.불성을 완전히 개발하여
부처를 이룰때 연꽃은 활짝 피어나게 된다.
이 연꽃이 활짝 피어날 때까지 두려워 말고 정진하여라.
내가 너희와 언제나 함께 있을 것이니..."
또 오른손의 감로병에는 감로수가 들어 있다.
이 감로수는 불사를 뜻한다.불교의 여러 의식문에는
감로병을 묘사한 쇄수게가 수록되어 있다.
관음보살 대의왕이여
감로병 중에 가득한 법수의 향기로
마의 구름을 세탁하여 서기를 일으키고
열과 번뇌를 소제하여 청량을 얻게 하네
이 새수게를 풀이하면서
관세음보살이 감로병을 들고 계신 까닭을 음미해보자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기관음이 있다.
우리가 소리를 듣고 관하는 그 자리가 곧 자기관음인 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소리를 올바로 듣고 관할 때 누구나 가장 적합한 의왕이 된다.
그 의왕은 육체라는 감로병을 가지고 있다.
감로병에 구멍이 나면 불사의 감로수는 담겨 있을 수가 없다.
육체를 잘 보존하라는 말이다.
이 육신을 잘 다스려 선정과 지혜를 닦으면 정혜수라는 법수가 생긴다.
곧 불사의 감로수가 생기는 것이다.이 법수는 마의 구름을 세탁하는 힘이 있다.
이 정혜수는 모든 열과 번뇌를 소제하는 힘을 갖추고 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를 괴롭히던 마의 구름을 찬란한 서기로 바꾸어 놓고
이제까지의 열뇌를 그대로 청량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수행을 할때,우리가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염할 때,
우리들 몸 속의 감로수가 작용하여 같은 시간,같은 장소에서
새로운 세계를 열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감로병과 감로수는 결코 관세음보살만이 가진 것이 아니다.
우리들 속에 있는 불사의 감로수,
그것을 찾아 올바로 활용할 때 우리는 관세음보살과 한 몸이 되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의 감로병은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깨우쳐주고 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의 머리에 쓴 보관에는
부처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부처님은 아미타불이시다.관세음보살이 아미타불을
근본 스승으로 삼고 항상 모신다고 하였으므로 이를 조형화하여 나타낸 것이다.
2, 성관음(聖觀音)탱화
관음탱화는 관세음보살에 관한 신앙을 그림으로 묘사한 신앙도이다.
현존하는 관음탱화 중에는 고려시대에 그려진 것이 11점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일본의 소장가나 사찰에 보존되어 있으며
현재 우리나라 사찰에 있는 탱화는 대부분이 17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일본에 있는 대부분의 고려 관음탱화에는 성관음이 묘사되어 있다.
화엄경의 입법계품에 근거하여 묘사한 성관음탱화는
우리나라의 관음신앙이 법화경 보문품이나 능엄경 뿐만 아니라
화엄경과 화엄사상에도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
입법계품에 의하면 관세음보살은 인도의 남쪽바다 가운데 있는
보타락가산에 거주하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이라고 한다.
보타락가산에는 많은 성중이살고 있으며,항상 광명이 넘치고
꽃이 끊임없이 피어 말할 수 없이 좋은 향기가 언제나 가득한 곳이다.
이곳의 맑고 깨끗한 연못가 금강보석위에 관세음보살이 결가부좌하고
중생을 위해 설법하고 있으며 때때로 선재동자의 방문을 받기도 한다.
이와 같은 전경을 묘사한 것이 학계에서
수월관음탱화라는 명칭으로 통용되고 이것이 성관음탱화이다.
관음탱화의 중앙에는 관음보살이 좌정하고 있고,
그 아래쪽에 협시로서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이 많이 그려져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관음탱화는 중국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이 있다.
선재동자.암굴.염주.공양자 및 보주를 든 용,한쌍의 청죽 등의 표현은
다른 나라 탱화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모습이다.
이와같은 표현의 연원은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 중
동해 낙산사를 세운 신라 화엄종의 초조 의상대사에게서 찾아야 한다.
당나라에서 귀국한 직후,관세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하기 위해서
동해의 관음굴을 찾아간 의상대사는 스스로 지은 백화도량발원문을
마음으로 염하면서 쉬임없이 관세음보살을 찾았다.
발원문은 세세생생 관음을 친견하기 위해서 귀명하되
관세음보살이 아미타불을 이마 위에 이고 계심과 같이 관음대성을
이마 위에 모시고 영원한 본사로 삼겠다는 간절한 신앙 고백과
일체 중생이 관음의 이름을 생각하여
함께 원통삼매에 들기를 기원하는 내용을 요지로 삼고 있다.
재계한 지 7일만에 좌구를 새벽 물 속에 띄웠더니
천룡 등 8부신이 관음굴 속으로 스님을 인도했다.
굴 속에서 공중을 향해 예배하자 수정염주 하나가 스님의
손에 쥐어졌으며,동해 용에게서 여의주 한 알을 받았지만
관음의 진신은 친견할 수 없었다.
스님은 다시 7일 동안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정진하였고
마침내 관음진신을 친견하게 되었다.환희 속에서
쌍죽이 나는 곳에 불전을 지으라는 관음의 말씀에따라
낙산사를 창건하고 친견한 진신의 모습과 같은
관음상과 수정 염주,여의주를
불전에 모신 후 떠나갔다. [삼국유사]
의상대사가 관음 친견과 관련된 암굴.염주.보주.
그리고 절터를 예시한 한 쌍이 청죽 등이
수월관음탱화에 그대로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 김현준님의 [관음신앙. 관음기도법]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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