妙法蓮華經(法華經) 염불 독경/부처님의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스크랩] 관세음보살 보문품 - <48> - 무진의 보살이 바친 보석은‘진리’ 다시 중생에게 돌아가야‘회향’

원행화 2012. 11. 8. 21:17

 

<48>

 

 

무진의 보살이 바친 보석은‘진리’
다시 중생에게 돌아가야‘회향’

 

 

 

 

 

그때 부처님께서 관세음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기 이 무진의보살과 사부대중과 하늘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 사람인 듯 아닌 듯한 것들을 불쌍히 여겨 그 영락을 받으라.” 곧 관세음보살이 사부대중과 하늘 용과 그리고 사람인 듯 아닌 듯한 것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그 영락을 받으시더니, 둘로 나누어 한 몫은 석가모니불께 바치고 남은 한 몫은 다보부처님의 탑에 바쳤다 “무진의야, 관세음보살은 이와 같이 자유스러운 신통력을 가지고 사바세계에 노니느니라.”

부처님과 무진의보살이 관세음보살에 대하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우리의 주인공은 곁에 조용히 머물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자기 성품이 없어 텅 비었음(空)을 누구보다도 환히 깨달은 관세음보살이었기에 자신을 찬탄하는 무진의보살과, 자신에게 쏟아지는 한없는 찬탄과 숭배조차도 텅 빈 것이라고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에게 올리는 무진의보살의 그 아름다운 보석을 말없이 거절하였던 것이지요.

좥보문품좦이 『묘법연화경』의 한 부분이라는 앞에서의 설명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묘법연화경』은 우리 같은 중생에게도 부처님과 똑같은 지혜가 있으며 그런 사실을 일깨워주고 보여주기 위해 부처님께서 오셨다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관세음보살이 그토록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오직 중생들을 구제하려고만 애쓰는 것은 바로 이런 법화경의 정신을 실천하려는 것일 뿐입니다.

중생의 입장에서야 관세음보살 덕분에 자신의 가치를 알아차리고 괴로움을 벗어나 제자리를 찾아가게 되었으니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려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관세음보살의 입장에서는 그저 모든 것이 본래 놓여 있어야 할 자리를 재확인시켜주었을 뿐이니 새삼 자신이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무진의보살이 값비싼 보석을 제 몸에서 끌러 공손히 받들어 올리지만 극구 사양한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권유로 두 손을 내밀어 받을 때 관세음보살에게는 ‘이것은 비싼 보석’이라는 생각이 없었을 것입니다. ‘저 사람이 나한테 은혜 갚으려고 준다’는 생각도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은 그저 이 소중하고 간절한 마음이 지나가는 통로일 뿐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보석을 받자마자 둘로 나누어 부처님과 탑에 바쳤던 것입니다.

뜬금없이 웬 탑이냐구요? 그렇다면 『묘법연화경』의 견보탑품(見寶塔品)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석가모니께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 땅에서 탑 하나가 저절로 솟아났는데 그 속에는 다보부처님이 들어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석가모니께서 그 탑을 여시자 다보부처님은 자신의 자리를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반 양보하셨습니다. 석가모니는 그 탑 속에서 법화경의 나머지 부분을 설법하셨고 다보부처님은 곁에서 고요히 귀 기울이셨습니다. 다보부처님의 출현은 『묘법연화경』의 가치를 더욱 높여줍니다. 왜냐하면 이 분은 법화경의 가르침이 진실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 경이 설해지는 어느 곳 어느 때에라도 나타나시겠다며 서원을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좥보문품좦을 설하시기 전에 이미 다보부처님은 탑만 남겨둔 채 그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다보부처님의 탑에 올렸다고 말한 것이지요.
무진의보살이 바친 보석은 ‘진리’였습니다. 그 진리는 관세음보살의 손을 거쳐 석가모니와 다보부처님에게 바쳐졌습니다. 그 진리는 다시 중생들에게 뿌려질 것입니다. 이것이 회향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lmrcitta@hanmail.net

<2004-05-05/7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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