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법연화경 신해품 제 4
묘법연화경 신해품 제 4 2002/05/31
동광스님
#. 비유품에서 사리불이 부처님으로부터 수기 받는 것을 보고, 또 부처님이 설하신 삼계화택의 비유설법을 들은 부처님의 4대 제자인 수보리. 마하가전련. 마하가섭. 마하목건련은 생각하기를 “지금까지 우리들은 소승의 열반을 얻어, 이 이상의 구경이 없으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삼계화택의 설법을 듣고 이승과 삼승은 부처님께서 방편으로 설하심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신해품은 4대 제자 자신들이, 나이가 많은 승가의 상수제자로서 부처님의 설법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나, 영산회상에서 삼계화택의 비유설법을 듣고 성문인 자신들도 성불할 수 있음을 깨닫고, 환희하여 깨달은 바를 궁자의 비유로써 부처님께 말씀드리는 것이다.
*. 이들은 스스로 소승에 집착하여 있었으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너희들은 다 나의 자식”이라는 말씀을 굳게 믿어, 자기들도 불자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
*. 아버지의 대자비심으로 인하여 마음을 열어, 성문은 성불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것을 이제 그 의심을 버리게 되어 환희하는 것이다.
*. 4대 제자는 부처님의 교화방법을 깨달아, 방편으로써 다섯 단계의 비유를 들어 부처님께 말씀드리게 된다. 이것이 장자궁자(長者窮子)의 비유이다.
#. 다섯 단계의 비유를 들어 이해하였다는 비유의 내용.
1. 아버지와 아들이 헤어진 것의 비유는 방편품에서 삼승을 열어 일승을 나타내는 것을 이해하였다는 비유다.
대통지승불 때의 하종으로부터 중간까지를 나타내신 것이며, 대승의 수행을 물리치고 소승의 수행에 힘쓰는 것이다. 이것을 원문에서 부자상실 퇴대취소(父子相失退大取小)라 비유한 것으로서 하종익(下種益)에 해당된다.
2. 궁한 아들이 떠돌면서 품팔이 중에 아버지와 만나는 비유는, 비유품에서 장자가 집에서 불이 난 것을 보는 것을 이해하였다는 비유다.
부처님은 임시로 화엄을 설하여 중생에게 주어 중생들이 화엄을 받아들이는지를 시험해 보는 것으로, 이것을 원문에서 부자상견(父子相見)이라 비유한 것이며 조숙익(助熟益)에 해당된다.
3. 도망치는 아들을 데려오게 하는 비유는 비유품에서 큰그릇과 책상을 버리고 수레를 쓰신 비유를 이해하였다는 비유다.
부처님께서 화엄을 설하시어 중생을 시험해 보았으나 알아듣지 못하여, 근기에 따라 아함부를 먼저 설하시고, 다시 방등을 설하시어 유인하고 하책하여 탄가하는 것으로서, 즉 소승에 머물러 있는 성문과 연각을 나무라시는 것으로, 원문에서 부자추유(父子追誘)라 비유한 것이며 조숙익에 해당된다.
4. 집안 살림을 맡기는 비유는 방등경에서 소승을 하책하신 것과, 대품경에서 수보리등이 부처님을 대신하여 가르침을 펴옴을 이해하였다는 비유다.
환경이나 조건에 영합할 수 있는 것은 남기고 그렇지 못한 것은 소멸하는 것으로, 반야의 도태라 하여 필요하지 않는 것은 버린다는 것으로, 원문에서 영지가업(領知家業)이라 비유한 것이며 조숙익에 해당된다.
5. 장자가 아들에게 가업을 물려주는 비유는 큰 수레를 준 것에 비유함을 이해하여 바로 방편을 버리는 것을 이해하였다는 비유다.
진실하게 법화경을 개회한 것으로, 즉 삼승을 열어 일승에 들어가는 것을 비유한 것으로, 원문에서 정부가업(政付家業)으로 비유하신 것이며, 부처님의 대자비심의 은혜를 찬탄하여 마치는 것으로 해탈익(解脫益)이라고 한다.
#.장자는 자식을 알아보고 “내가 아버지임”을 말씀하시지만 아들은 용렬하여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나의 아버지는 저렇게 거룩하고 훌륭한 분이 아니라” 생각하고, 붙잡히면 평생 일만하고 죽을 것이라 생각하여 놀라서 기절하는 것은 소승에 집착하여 있기 때문에 근기가 하열하여 부처님의 지혜를 설하시나 믿지 않는 것과 같다.(화엄경을 설하시나 알아듣지 못한다는 뜻)
그러므로 장자는 사람을 보내서 놀라지 않게 하고, 똥거름 치는 일을 하면 품삯을 넉넉히 주겠다고 하여 다시 데려와 똥거름 치는 일부터 시켜서 점차로 조숙시켜 관리케 한 것이다.
이것은 부처님의 교화 방법으로서 먼저 아들의 근기를 보니 하열하여 기절하였으니, 삼장의 가르침으로 견혹과 사혹을 단진 시키고 난 후에 다시 방등의 가르침을 설하시고, 다시 반야의 공의 지견을 설하셨으나, 부처님의 본래의 뜻은 응신불로서 입멸에 들기 전에 모든 부처님이 갖고 계시는 전 재산을 물려주는 데 있으므로, 즉 공에서 나아가 실상을 깨달아 불지견을 설하시어, 오직 일불승만이 있으며, 이승과 삼승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이승과 삼승에게는, 중생들의 욕망과 성품이 하열하여 이에 맞게 화엄을 설하시고, 아함을 설하시어 다시 방등십이부를 나타내시고, 다시 반야를 설하시어 근기를 조숙시킨 다음에 법화 열반을 설하시어 일불승에 귀입 시키는 것을 4대 제자들은 알았음을 나타낸 것이다. 이들은 부처님의 대자비로써 소승에서 벗어나 실상의 도리를 깨달아 일불승에 들게 되었다는 것이 장자 궁자의 비유인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일대 오십년의 설법을 장자 궁자의 비유로써 네 사람의 상수제자들은 깨달은 바를 말씀드린 것이다.
#. 경문에 曰. “궁한 아들은 크게 놀라고 크게 부르짖어 원망하되, 죄 없이 잡혔으니 필시 죽게되리라, 더욱 겁을 내어 기절해서 땅에 쓰러짐이라.”
4대 제자들이 부처님께서 증득하신 후에 제일 먼저 화엄경을 설하셨으나, 알아듣지 못함을 표현한 것이며, 이것을 화엄의 경계라 한다.
#. 경문에 曰. 그 때 궁한 아들은 먼저 그 값을 받고 와서 같이 똥거름을 치는지라, 그 아버지는 아들을 보고 불쌍히 생각하며 안타까워하였나이다.
부처님께서 화엄경을 설하시지만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므로 아버지인 부처님께서는 이들을 위하여 소승교인 아함경을 설하시니 받아들이는 것으로서, 이것을 아함의 경계라 한다.
#.경문에 曰. 너희들은 부지런히 일할 것이며 게으름을 피우지 말라, 이런 방편으로써 그 아들을 가까이 함이라.
이러한 방편으로 아들을 가까이 하는 것은 소승을 탄가하고, 방등 십이부경을 설하시니 받아들이는 것으로서, 이것을 방등의 경계라 한다.
#. 그 때 궁한 아들은 가르침의 명을 받고 여러 가지의 물건과 금. 은과 진귀한 보물과 모든 창고를 맡아 가졌으나,-----그 머무르는 곳은 여전히 본래 있던 곳이었으니, 이는 천하고 못났다는 마음을 또한 능히 버리지 않고 있었나이다.
반야경 설하심을 받아들이는 것으로서, 이것을 반야의 경계라 한다.
#. 경문에 曰. 지금 나의 소유인 일체의 재물은 다 이 아들의 소유이며, 그 전의 출납한 것도 다 이 아들이 알아 할 바이라 하였나이다.
법화경 설하심을 받아들이는 것으로서, 이것을 법화 열반의 경계라 한다.
#. 세존께서 방편력을 가지고 여래의 지혜를 설하시건만 저희들이 부처님을 쫓아 열반의 하루의 값을 얻고서는 크게 얻었다 하고 이 대승법을 구할 뜻이 없었나이다.
4대 제자들은 묘법연화경 비유품의 설법을 듣고 비로소 미증유를 얻었으며, 법왕의 큰 보배를 저절로 얻게 되었음을 깨달았다는 것을 부처님께 말씀드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