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담쟁이 ㅡ 강영은. 도종환
담쟁이 넝쿨 ㅡ 권대웅 . 조원. 최승호
담쟁이에게 듣다 ㅡ 박해옥
담쟁이 강영은(1957- )
바위나 벽을 만나면 아무나 모르게 금이 간 상처에 손 넣고 싶다
단단한 몸에 기대어 허물어진 생의 틈바구니에 질긴 뿌리 내리고 싶다
지상의 무릎 위에 기생하는 모으든 슬픔이여!
벼랑끝까지 기어오르는 기막힌 한 줄의 문장으로
나는 너를 넘고 싶다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 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수원 화성
담장이 넝쿨 권대웅
김과장이 담벼락에 붙어있다
이부장도 담벼락에 붙어있다
서상무도 권이사도 박대리도 한주임도
모두 담벼락에 붙어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밀리지 않으려고
납작 엎드려 사력을 다해
견뎌내는 저 손
때로 바람채찍이 손등을 때려도
무릎팍 가슴팍 깨져도
맨손으로 암벽을 타듯이
엉키고 밀어내고 파고들며
올라가는 저 생존력
모두가 그렇게 붙어 있는 것이다
이 건물 저 건물
이 빌딩 저 빌딩
수많은 담벼락에 빽빽하게 붙어
눈물나게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수원 화성
담쟁이 넝쿨 조원
두 손이 바들거려요 그렇다고 허공을 잡을 수 없잖아요
누치를 끌어올리는 그물처럼 우리도 서로를 엮어 보아요
뼈가 없는 것들은 무엇이든 잡아야 일어선다는데
사흘 밤낮 찬바람에 찧어낸 풀실로 맨 몸을 칭칭 감아요
그나마 담벼락이, 그나마 나무가, 그나마 바위가, 그나마 꽃이
그나마 비빌 언덕이니 얼마나 좋아요 당신과 내가 맞잡은 풀실이
나무의 움막을 짜고 벽의 이불을 짜고 꽃의 치마를 짜다
먼저랄 것 없이 바늘 코를 놓을 수도 있겠지요
올실 풀려나간 구멍으로 쫓아 들던 날실이 숯덩이만한 매듭을 짓거나
이리저리 흔들리며 벌레 먹힌 이력을 서로에게 남기거나
바람이 먼지를 엎질러 숭숭 뜯기고 얼룩지기도 하겠지만
그래요, 혼자서는 팽팽할 수 없어 엉켜 사는 거에요
찢긴 구멍으로 달빛이 빠져나가도 우리 신경쓰지 말아요
반듯하게 깎아놓은 계단도, 숨 고를 의자도 없는
매일 한 타래씩 올을 풀어 벽을 타고 오르는 일이
쉽지만은 않겠지요 오르다 보면 담벼락 어딘가에
평지 하나 있을지 모르잖아요 혹여, 허공을 붙잡고 사는
마법이 생길지 누가 알겠어요
따박따박 날갯짓하는 나비 한마리 등에 앉았네요
자, 손을 잡고 조심조심 올라가요
한참을 휘감다 돌아설 그때도 곁에 있을 당신
모네 생가
담쟁이넝쿨 최승호
허공이
드높은 담이었다면
담쟁이 덩굴들은 더듬더듬 올라 가다가
허공을 훌쩍 넘어 갔을 것이다
허공 너머에
또 무슨 알 수 없는 담이 겹겹이 치솟아 있는지 모르겠으나
넘어가고 넘어간 뒤에도 무수한 덩굴손들은
끝없이 뻗어 나가고 힘차게 뻗어나가지 않았을까
참으로 질긴 담쟁이 덩굴이라면
담쟁이덩굴의 근성으로
허공이 바다 밑으로 주저 앉는다 해도 기어 오르고
줄기가 토막 다 해도 거대한 낙지발처럼 꿈틀꿈틀 뻗어 나갔을 것이다
예수원
담쟁이에게 듣다 박해옥
바람이 조시를 읊던 지난해 가을
보따리 보따리
그가 내다버리는 것이 무엇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희망이란 대상이 높고
그 빛깔은 푸른 줄만 알았기에
버리는 이유를 몰랐습니다
덧창 속에 갇혀지고
커튼을 비집고 햇살 왕래가 잦았지만
존재가치를 운운할수록 벗은 나무처럼 춥기만 했지
당신 거기 계신 줄 몰랐습니다
이건 이만큼 부족하고
저건 저만큼 부족해서
둘러선 세상만 탓하며
그악스레 가시를 키웠습니다
눈만 들면 꽃 뿐인 이 계절에
소스라치게 놀랍습니다
가시도 없이 벽을 오르는 저 순연한 행보
길은 언제나 절벽 끝에서 시작 된다시니
버릴 걸 못 버린 꼴이라시니
내 이적 물 말아먹은 세월이 켕겨 부끄럽기만 한데
깔깔대는
저,
저.
모네
'명시 명음악 감상 > 명시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0) | 2011.09.22 |
---|---|
[스크랩]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 (0) | 2011.09.22 |
[스크랩] 도종환... 접시꽃 당신 (0) | 2011.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