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행품 제일⑥> 부처님이 갖추고 계신 무외(無畏)의 힘 2006/12/28
동광스님
부처님이 갖추고 계신 무외(無畏)의 힘
부처님은 열 가지 힘을 갖추셨지만 우리 중생들은 그중에서 한 가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갖추신 힘을 한 가지라도 가지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서는 자기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를 모른다. 그러므로 항상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것이다.
자비십력무외기(慈悲十力無畏起). 무외(無畏)라 하는 것은 두려워하거나 거리낌이 없음이다. 부처님이 가지신 무외는 그것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고 설법을 해 주시는 것이다. 부처님은 차별을 하시지 않는다. 근기의 높고 낮음도 분별하지 않으시고, 물질의 빈부도 돌아보지 않으신다. 누구든지 부처님의 법을 믿고 실천해나가면 반드시 성불이 이루어짐을 설하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실로 대자대비하신 것이다.
부처님의 무외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정등각무외, 누영진무외, 설장법무외, 설출도무외가 그것이다.
모든 부처님은 진실한 깨달음을 갖추신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환경에 처해도 놀라시거나 두려워할 것이 없다. 따라서 어떤 경계에도 마음이 흔들리거나 움직임이 없다. 이것이 정등각무외이다.
누영진무외에서 누는 번뇌 망상이다. 말하자면 미혹한 마음인데 이 미혹한 모든 마음을 영원히 없이 하는 힘이 누영진이다. 다시 말하면 일체의 번뇌 망상을 영원히 없이하는 힘인 것이다.
중생들은 스스로가 일으키는 마장에 걸려서 헤어나지를 못한다. 더구나 마에 걸리는지 아닌지조차도 모르고 살아간다.
마장에 걸리는 것을 막아주는 힘이 곧 설장법무외이다. 부처님께서는 부처가 되시기 직전에 수많은 장애를 받으셨는데, 그 중에는 여자가 유혹하는 것, 악한 귀신이 해치려고 하는 것 등 갖가지를 다 극복하심으로써 설장법무외를 갖추신 것이다. 그래서 마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주는 힘도 스스로 갖게 된 것이다.
용수보살은 지도론에서 ‘제법의 실상 이외의 것은 모두가 마장이다.’ 라고 했는데, 제법의 실상이라 하는 것은 묘법연화경 방편을 일컫는 것이다. 서품에서부터 안락행품까지가 즉 제법실상이다. 이 제법실상이외의 것은 모두가 다 ‘마구니’인 것이다.
설출도무외에서 ‘출도’라 하는 것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출가하는 것이다. 즉 말하자면 부처님 제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 출도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산중에 들어가서 수행하는 것만이 출도냐? 물론 그것도 출도이지만 재가자로서 이 사회에 있으면서도 얼마든지 부처님 제자가 될 수 있다. 산중에 틀어 박혀 있는 것이 진정한 출가라고 알고 있는 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출가라 하는 것은 마음의 출가가 되어야 한다. 우선 출가하기 이전에 가졌던 마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속적인데 가졌던 집착을 버려야 하고, 그다음에 탐욕을 버려야 한다. 또 애욕, 애증을 버려야 한다. 즉 사랑하는 것도 집착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남녀관계, 부모자식간의 관계 이 모든 것을 다 끊어 버리고 오직 부처님을 믿고 내가 바르게 수행해서 반드시 부처님과 같은 훌륭한 길을 가겠다는 이런 마음을 굳게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마음의 출가이다.
그런데 마음의 출가라 하는 것은 그럼 마음만 먹으면 되느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다. 부단한 노력을 해서 행위로 그것이 나타나야 된다.
법화경을 믿는다 하는 것은 내 몸을 법을 위해서 버릴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해야 진정한 불자라고 하셨다.
이처럼 새로운 각오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진실하게 행하는 것이 마음의 출가인 것이다. 부처님이 모든 중생들에게 바라시는 바가 바로 이런 진정한 출가임을 알아야 하겠다.
이 진정한 출가의 길을 설하시는 힘을 갖추고 계시는 것이 설출도무외다. 부처님은 이러한 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하시는 힘을 갖고 계신다는 것이다.
이 네 가지 무외도 부처님의 한량없는 덕 가운데 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그러한 덕이 형상으로써 나타나는 것이냐? 형상으로도 나타나지마는 진실로는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초월한 분이다. 그러므로 열반경에서 “나의 형상에도 의지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불상을 모셔놓고 그것에 경배를 하는 것은 우리들의 근기로서는 직접 눈으로 보아야 믿음이 생기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실은 “형상이 없으면서 있는 몸(무량의경 덕행품)”인 것임을 명심하여 그 불상이 살아 계신 부처님이라고 착각을 하지 말 것을 경책하신 말씀인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부처는 형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절에 모신 부처님은 특별한 상호임을 알아야 한다.
열반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목화화상 개안공양은 반드시 이 묘법에 한한다.” 나무로 조각을 해서 불상을 모셨더라도 진정한 부처의 상호로 만들고자 하면 반드시 ‘묘법연화경으로써 개안, 즉 점안해야 된다.’ 라는 말씀이다. 법화경으로 점안하지 않고, 법화경을 부처님 복장에 모시지 않으면 부처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 하면 “묘법연화경에서 일체 모든 여래께서 출현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출현하신다.’는 것은 곧 부처님을 나오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묘법연화경을 모시지 않으면 부처님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금강경을 모셔 놓으면 기껏 해봐야 성문으로서 아라한과를 증득한 것밖에 안 된다. 실로 불법을 잘 알지 못하고, 또 묘법연화경과 열반경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해서 금강경을 복장에 모시고 점안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석동광큰스님(실상연화종 현광사) > 석동광스님 묘법연화경 법문(현광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묘법연화경 관세음보살 보문품 제25 (0) | 2014.04.17 |
---|---|
묘법연화경 견보탑품 제11 (0) | 2014.04.17 |
9. 우리나라의 법화불교 (0) | 2014.04.17 |
8. 화의의사교 (0) | 2014.04.17 |
7. 화법사교 (0) | 2014.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