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봉창은 일련종에서 일련대사가 당시 귀족불교였으므로 민중에게는 불교가 금전과 시간을 많이 허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민중에게 불교의 존재를 알릴까하여 묘법연화경에 귀의하라고 하여 <남묘호랭게꾜 - 우리말로 나무묘법연화경> 이라고 했던것을 후세의 일련대사 심봉자들이 그 제목을 마치 구원의 본불과 혼동하여 선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법화경 여래수량품의 부처님은 구원의 본불 즉 영원한 생명을 가진 부처님 바꿔 말하면 한량없는 수명을 가진 부처님이라는 인도말 아미타바. 아미타유스를 아미타불 이라고 하는데 이는 부처님의 수명이 영원하다는 뜻이지 또 어떠한 부처님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불교는 자기를 찾는 것, 즉 내가 누구냐. 바꿔 말하면 이것이 무엇이냐 라고 하는 질문을 해결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생명이 영원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에 있으므로 누구든가 아미타불을 염해서 자기와 아미타불이 일체가 되므로써 나의 생명이 영원하다는 것을 확신하는데 있습니다. 아미타불을 부른다고하여 하근기의 극락왕생을 위한 것은 아니고 내 자신이 아미타임을 깨닫는데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곧 우주의 대 생명임을 깨닫는데 있는 것에 있으므로 묘법연화경에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정도는 아닙니다. 명색이 천태법화행자같으면 마땅히 구원실성의 본불인 부처님과 내가 동일하다는 것을 깨닫는데 있지 나무묘법연화경을 불러서 복을 타는데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철저하게 자기를 부정하고 너와내가 하나임을 가르켰는데 이것을 잊어버리고 자기의 육체적인 욕망충족에 목적을 둔 나무묘법연화경 봉창으로는 영원히 성불은 불가능합니다. 우주의 대생명은 곧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식>입니다. 즉 아라야식이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잠잘때 숨쉬게 하는 것도 본래가 콧구멍으로 들어올때 무의식적으로 재채기를 하는 것도 역시 아라야식이며 우리가 죽고나면 생명<아라야식>만 남는 것이고 나라는 영혼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고정된 실체가 없는데 무슨 나라는 영혼이 있겠습니까.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철저하게 물질적 현상에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이며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이 물질이라는 말입니다. 바꿔 말하면 곧 나는 나라는 존재는 어디까지나 고정된 실체가 없고 육체는 일시적으로 가합된 존재에 불가 하다는 것을 가르쳐서 모든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게 한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방편품에서도 영리제착<永離諸着>이라고 한것입니다. 이점에 유의해 주십시요. 제목에 집착하는 것도 집착에 하나입니다. 그 집착에서 벗어나야만이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고 마음의 평안을 얻어야만 성불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 합니다_()_
거룩한 부처님 법에 귀의 합니다_()_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 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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