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광큰스님(실상연화종 현광사)/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법문[法文

[스크랩] 법화신앙 - 제八장 이미 설하였고 지금도 설하며 앞으로도 설하리라.

원행화 2011. 9. 18. 15:33

 

제八장 이미 설하였고 지금도 설하며 앞으로도 설하리라.

 

내가 설한 경전이 한량없어 千만억이니 이미 설하였고 지금 설하며 앞으로도 설하리라 그러나 그 중에서 이 법화경이 가장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려움 이니라. (법사품 一八五面)

 

七千 여권이나 되는 많은 경전 중에서 과연 어느 것이 가장 뛰어난 것일까? 아마도 이것은 불교를 연구하려는 사람은 누구나가 다 맨 먼저 알고자하는 바 일 것이다.

이에 대한 세존의 대답은 아주 분명하다. 그러나 멸도(滅度)하신 지 三千년이나 된 오늘에 이르기까지 불교신도 사이에서는 아직도 확정을 보지 못한 형편이다. 참으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이다. 이러한 불가사의가 실제로 존재해 있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

각 종파의 조사(祖師)들은, 자기 종파를 개창(開創)함에 있어 그 근본이 될 경전, 의거(依據)해야 할 경전, 곧 의경(依經)을 정했다. 그리하여 그 경전을 모든 불경 중에서 가장 높고 가장 뛰어나고 가장 거룩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화엄종(華嚴宗)은 화엄경(華嚴經),

진언종(眞言宗)은 대일경(大日經),

정토종(淨土宗)은 아미타경(阿彌陀經),

천태대사(天台大師)와 일련대사(一連大師)는 다 같이 법화경(法華經)을 의경으로 하여 한 종파를 개산(開山)하였다.

이 조사들이 각자의 의경을 모든 경전 가운데서 가장 높은 경, 가장 뛰어난 경, 가장 거룩한 경이라고 선정(選定)함에는 각각 그만한 이유가 있었음은 새삼스러이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일련대사는 말하기를「세상을 보매 모두가 제각기 나도 나도 하지마는 나라의 주인은 단 한 사람뿐이다. 두 사람이라면 나라가 평온하지 않을 것이요, 한 집안에 주인이 두 사람이 있으면 그 집은 반드시 파멸할 것이다. 일체경(一切經)도 또한 이와 같지 않겠느냐. 어느 경이건 한 경만이 一체경의 대왕(大王)이실 것이련마는」(三八面)

이라고 말한 것처럼, 모두가 한 교주(敎主)께서 설하신 경전이다. 아무리 그 수가 많다고 할지라도, 가장 높고 가장 뛰어나고 가장 거룩한 경전이 둘이고 셋이고 있을 리가 없다. 그것이 어떤 경전이건 간에 최고의 경전은 단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판 바와 같이, 각종파의 의경은 각각 다르고, 또 제각기 그 경전이 최고의 경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우리는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미혹이 생겨난 근원은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큰 이유가 둘이 있으니, 그 하나는 조사들의 개인적인 차이, 곧 그의 심경(心境), 환경(環境), 소원(所願), 전통(傳統), 사설(師說)등등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의경으로 정한 그 경전에는 다「이 경이 一체경 중에서 제 一이다.」하는 뜻의 문구가 있어서 이에 집착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확실히 이 두 가지가 조사들이 의경을 선택할 때에 크게 영향했으리라고 생각된다.

첫째의 이유는 그만두고, 둘째는 이유에 대해 좀 검토해보기로 하자. 여기서 우리는 먼저 一체의 사견(私見), 아견(我見), 선입견(先入見)을 버리고, 또 어떠한 조사, 어떠한 학자의 말일지라도 一체이에 구애되지 말고, 오직 경문에만 의하여야 한다. 이러한 태도를 잃고서는 끝내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허심탄회(虛心坦懷)한 마음이야말로 부처님의 뜻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가장 근본이 도는 조건이다.

이제 각 종파의 의경을 들추어 보건대, 위에 말한 바와 같이 어느 경이나 다「이 경이 일체경 중에서 제일이다.」하는 뜻의 구절이 있음을 본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일(一切)라는 두자의 내용이다. 이 책 첫머리에서 말한,「말은 비록 같을지라도 뜻은 각각 다르다.」의 말씀을 미루어 생각해야 하리라. 다같이「일체」(一切)가 기록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 뜻과 그 내용은 때와 곳과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른 것이다.

一체라고 하였을 지라도 그 一체가 세존일대(一代)五十년 동안에 설하신 모든 경전을 가리키는 가 아닌가에 따라 그 一체의 범위는 달라진다.

어느 한 경전을 중심해서 생각할 때, 그 경전을 설하신 당시를「현재」로 하고, 그 이전을「과거」로 하고, 그 이후를 「미래」라 한다면, 세존 一대의 五十년은 과거 현재 미래의 세 시기로 구별될 것이다. 그리고 각 경전에 있는 一체라는 구절이, 과거에 설하신 경전의 一체를 말씀하신 것이거나, 또는 현재 설하고 계신 경전의 一체를 말씀하신 것이거나, 아니면 미래에 설하실 경전의 一체를 말씀하신 것이요, 一대 五十년의 과거 현재 미래의 삼시(三時)에 걸쳐서 설하신 경전 전부를 통틀어서 지적하신 一체가 아니라면 그것은 그때그때만의 一체요, 진정한 一체가 아니다.

그러니까, 법화경 이외의 모든 경전에 있는 一체는 세존의 과거 현재 미래의 삼시를 통틀어서 말씀하신 一체가 아니다. 과거에 설하신 경전의 一체이거나, 또는 과거와 현재까지의 경전의 一체일뿐, 미래의 것에는 언급하지 않으셨다. 따라서 그 경전이 一체경 중에서 제 一이라고 했더라도, 그것은 그 당시까지의 경전 중에서 제 一인 것이요, 세존 一대

五十년 동안의 모든 경전 중에서는 제 一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법화경에는 앞에 든 바와 같이「내가 설한 경전이 한량없어 千만억이니 이미 설하였고 지금 설하며 앞으로도 설하리라. 그러나 그 중에서 이 법화경이 가장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려움이라.」고 하셨으니, 이것은 곧 세존께서 스스로 법화경이야말로 일대 五十년의 과거 현재 미래의 三시에 설하신 一체의 경전 중에서 첫째가는 묘경(妙經)이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이설(已設」이란, 법화경 이전에 설하신 一체의 경전을 말씀하신 것이요,「금설(今設)」이란, 방금 설하신 무량의경(無量義經)등 一체의 경전을 말씀하신 것이요,「당설(當設)」이란, 법화경 이후에 설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열반경(涅槃經)등을 말씀하신 것으로서, 그렇기 때문에 법화경은 세존께서 설하신 一체의 경전 중에서 제 一가는 묘경(妙經)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진실로 법화경이야말로 一체의 경전 가운데서 가장 높고 가장 뛰어나고 가장 거룩한 경전, 그야말로 제왕경(帝王經)의 문()이라고 한다.「믿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란, 불교에서는「초승(超勝)」이라는 말과 뜻이 같은 말인데, 높은 교가 설해 있는 경전일수록 범부에게는 믿기 어렵고 이해가 어려운 것이니, 그러므로「이 법화경이 가장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는 말씀은 곧「이 법화경이 제一이다.」하는 뜻으로 해서되어도 좋을 것이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친히 경전 중에서 법화경이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세존 一대 五十년의 一체 경전 중에서 제 一

이라고 선언하셨는지라, 일련대사가「대저 이 법화경은 이금당(已今當)의 삼설(三設)을 구별하여 이전의 경은 미현진실(未顯眞實)이라 파하고, 서로 비슷한 경은 금설(今設)의 문으로써 이를 책하고 이후의 경은 당설(當設)의 문으로써 파함이니, 실로 三설은 제 一의 경이다.

라고 지적한 것은 당연하다하겠다.

아무튼 교상(敎相)을 분명히 밝히는 것은 불교를 연구함에 있어서나, 신앙함에 있어서나, 또는 널리 포교함에 있어서나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법화경인 까닭으로 세존께서는,

「내가 불도를 위하여 한량없는 국토에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널리 모든 경을 설하였으나 그중에서 이 경이 제일이니라.

(보탑품 二○三面)

하시어, 성도하신 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디서 어떠한 교를 설하였을지라도 이 법화경에 미치는 경은 없다고 말씀하셨다.

「숙왕화야, 비유하건대 일체의 냇물이나 강물이나 모든 물 가운데서 바다가 제일이듯이 이 법화경도 또한 이와 같이 모든 여래가 설한 경 가운데서 가장 깊고 큼이니라.(약왕품 三一四面)

고 말씀하셨다.

법화경은 一체경의 근간(根幹)이니 모든 경전의 생명수이다 소승경(小乘經)이라고 일컫는 아함경(阿含經)도 법화경에 의해 정속(整束)된다면, 그 가운데 법화경의 정신이 약동하고 있어 단순한 소승의 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존께서는「만일 이 깊은 경을 들으면 성문의 법을 결정해 마치느니라. 이는 모든 경의 왕이니」(법사품 一八七面)

라고 설하셨으니, 아함(阿含)이 곧 법화요, 법화가 곧 아함이라는 오묘(奧妙)한 뜻이 갖추어지는 것이다. 이 오묘한 뜻을 터득한다면 스스로 부처님의 지혜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불교의 연구는 물론 경전을 살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그것은 말로는 쉽지만, 어떤 사람이라도 불가능하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경전을 중심으로 해서 연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에 대해 나는 주저하지 않고「아함경과 법화경」이라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불교를 연구하고 불교에서 신앙을 구하는 것은 생활의 지도원리(指導原理)를 발견하고 인생행로의 광명을 찾아내기 위해서이다. 생활이란 하나는 현실적(現實的)인 것이요, 다른 하나는 이상적(理想的)인 것, 이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의 생활에 대하여 아함경은 현실 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법화경은 이상 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지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경전에 의해 생활의 지도원리를 알아야 한다. 또한 생활의 이 양면은 따로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현실 생활과 이상 생활이 합해져서 일체(一體)가 되어야 한다. 이 현실과 이상의 생활이 합친 것을 불교에서는「연꽃이 물에 있음과 같음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의미로 아함경과 법화경에서 생활의 지도원리를 발견하고 인생행로의 광명을 얻었다면 불교 연구의 목적은 우선 이루어진 셈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불교에 八만여의 법문이 있다고 하지만 그 중심은 아함경과 법화경이니 이 두 경을 제외하고는 불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이 두 경외에 많은 경전이 있지만, 그러한 경전의 연구는 꼭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함경과 법화경을 내어놓고는 불교는 성립되지 않지만, 다른 경전이 있고 없음은 불교의 성립을 근본적으로 좌우하지는 못하리라. 불교의 연구에 뜻을 두는 사람은 특히 이 점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런데 경전을 들추어본 사람들이 이 「아함이 곧 법화」「법화가 곧 아함」이라는 중요한 점을 잊고 있기 때문에 아함경에 설해 있는 말씀에 기울어진 사람은 아함경이야말로 세존께서 친히 설하신 것이고 법화경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하여 이른바「대승은 불설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가하면 또 법화경에 설해있는 말씀에 기울어진 사람은 아함경은 일상생활의 지도에 그치는 것으로서, 법화경에서 본다면 그것은 별로 가치가 없는 것 이라고 하여 헛되이「대승자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양쪽에 다 잘못이 있다. 다 같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존께서 설법하신 참 뜻을 알고자하는 우리는 이 아함이 곧 법화요 법호가 곧 아함이라는 중요한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서, 경전 사이에 혈맥(血脈)이 서로 통하는 연구를 하여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불교는 법화경과 아함경으로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른 많은 경전들이 다 필요치 않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대저 우리들의 사상과 생활은 넓은 들 가운데 외로이 서있는 단 한 그루의 큰 나무와 같은 것이어서는 안 된다.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서있는 큰 나무는 참으로 웅대하다. 그러나 아무리 웅대하다 할지라도 단 한 그루만이 외따로 서 있는 것은 도무지 풍치가 없고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느낌을 줄 것이다. 아무래도 그 웅대한 것에 풍치를 주는 무엇이 있어야 어울릴 것이다.

법화경을 웅장하게 큰 나무와 같다면, 이 거목(巨木)을 중심으로 하여 다른 여러 경전이 혹은 작은 나무가 되고 혹은 풀이 되고 혹은 돌이 되고 해서 이루어진 큰 정원 그것이 바로 불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화경은 다른 모든 경을 버리지 아니하고, 그와 동시에 다른 모든 경은 법화경을 떠나지 못하나. 알기 쉽게 말하면, 법화경은 다른 모든 경을 종합하여 통솔하는 경전이요, 다른 모든 경전은 법화경에 따르고 시중드는 경전이니, 이와 같이 각기 그 분수를 지킴으로써 불교는 우리에게 건전한 사상과 아름다운 진리의 생활을 하게 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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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행자실 -
글쓴이 : 매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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