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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六장 오직 一승법만이 있다.
十방 불토에는 오직 一승법만이 있고 二승도 없고 또한 三승도 없느니라. 부처님이 방편으로 설한 것은 제하노라.(방편품 四三面)
세존一대에 설하신 경전의 수는 五千여권이니 七千여권이니 하는 만큼 대단히 많다. 또 八만四千의 법문(法門)이라고도 하지만, 이것도 대체를 말한 것이고, 만약 그 하나하나를 센다면 이루 다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수없이 많은 법문은, 마치 하늘을 찌를 듯한 큰 나무의 가지와 잎이 한 줄기에서 뻗어 나간 것과 같이, 세존 출세의 본회의 교인 법화경을 근본으로 하여 가지가지로 설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많은 교가 통일성(統一性)이 없고 산만(散漫)한 것 같이 보이기 쉽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불교에는「하나에서 여럿이 나오고, 여럿은 하나로 돌아간다.」고 하여, 세존의 설법은 이 원리 원칙에 따라 설하신 것이다. 삼론종(三論宗)은 이 하나에서 여럿이 나오고 여럿은 하나로 돌아간다는 원리에서 세존 일대의 설법을 비판하여,「근본법륜(根本法輪)」「지말법륜(枝末法輪)」「섭말귀본법륜(攝末歸本法輪)」의 교판(敎判)을 세우고 있다.
이 교판으로 생각나는 것은, 주자(朱子)가「사서(四書)」의 하나인「중용(中庸)」의 서문(序文)에서 말하기를「이 책은 처음에는 한 가지 이치를 말하고 다음에는 흩어져서 만 가지가 되고, 끝에 가서는 합하여 도로 한 가지 이치가 된다.」고 한 말이다. 곧 중용은 우선 지성(至誠)의 일리(一理)를 내세우고 그 다음에는 지성의 일리에서 인간으로서 실천해야 할 온갖 윤리도덕(倫理道德)을 가르친 다음, 마지막에 가서는 본래의 지성의 일리로 결론지었다는 말이다.
세존의 설법도 이와 같아서 출세하신 근본이상(根本理想)을 토대로 하여 八만四千의 법문(法門)을 설하시고, 그 八만四千의 법문은 마지막에 가서는 출세의 본회인 一체 중생이 성불하는 대도에 귀결되어 있다.
무량의경(無量義經)에는「무량의(無量義)는 한 법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어떠한 경전의 어떠한 교도 법화경에서 선언하신 출세의 본회인 중생이 성불하는 대도(大道)의 한 법에서 갈려나온 것이다. 이와 같이 수없이 많은 교를 한데 결집(結集)하여 통일시킨 법화경이야말로 진실로 세존 출세의 본회인 지극 대승의 경전이다.
모든 경전에 설해 잇는 많은 교를 대강 정돈한다면, 그것은 세 가지로 된다.
그 하나는 성문중(聲門衆)에게 대하여 설하신 것이고, 또 하나는 연각중(緣覺衆)에게 대하여 설하신 것이고, 또 하나는 보살중(菩薩衆)에게 설하신 것이다.
이것을 삼승교(三乘敎) -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 - 이라 한다.
승(乘)이란, 교(敎)라는 뜻이다. 세존께서는 중생을 교법(敎法)이라는 배에 태워 가지고 미혹의 이편 언덕에서 생사유전(生死流轉)의 괴로운 바다를 건너 깨달음의 저편 언덕으로 건네어 주시는 것이므로, 불교에서는 교를 승(乘 - 타는 것에 비유함)이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교는 다만 위에 말한 세 종류의 사람들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다. 세존께서는 보살로부터 지옥에 이르는 구계(九界)의 모든 중생을 다 구제하시기 위해 각각 그 세계에 몸을 바꾸어 나타나셔서 교를 설하시는 것이므로, 위의 삼승(三乘)외의 천인승(天人乘 ), 인간승(人間乘), 수라승(修羅乘), 축생승(畜生乘), 아귀승(餓鬼乘), 지옥승(地獄乘)의 여섯 가지가 더 있다. 그러나 보통은 이 여섯 가지를 위의 세 가지에 포함시켜서 三승으로 부른다.
그러면 세존께서는 이들 三승에 대해 어떠한 교를 설하셨던가? 여기서 그것을 자세히 말할 수는 없으나, 그 대강을 간단히 요약해 보기로 하자. 먼저 성문(聲聞)에게는
一, 주로 인생이란 곧 고(苦)라는 것,
二, 그 고가 생겨나는 원인,
三, 고를 이겨낸 세상의 모습,
四, 그리고 그 고를 이겨내는 길,
이 네 가지의 교를 가르치셨는데 이것을 사성제(四聖諦)라 한다.
제(諦)라 하는 것은「심실(甚實)」하여 허(虛)가 아니 것」으로서 곧 위의 네 가지 교는 거룩하고 심실 하여 결코 허망(虛妄)하지 않다는 것이다 .
다음 연각(緣覺)에게는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괴로움도 즐거움도, 깨달음도 미혹함도, 어느 것이나 다 열두 가지 인연에 지배된다고 하셨다.
십이인연(十二因緣)은
一,「무명(無明)」- 과거의 번뇌.
二,「 행(行)」- 과거에 한 행동.
三,「식(識)」-어머니의 태 안에 들어가는 순간.
四,「명색(名色)」-태 안에서 발달하는 마음과 몸.
五,「육입(六入)」- 태 안에서 눈, 귀, 코, 혀, 몸 뜻의 여섯 가지가 자라는 것.
六,「촉(觸)」- 세상에 나서 바깥 세계와 접촉하는 것.
七,「수(受)」- 괴로움과 즐거움을 느껴 아는 것.
八,「애(愛)」- 희망하는 것에 마음이 끌리는 것.
九,「취(取)」- 사랑하여 가지는 것.
十,「유(有)」- 애(愛)와 취(取)의 행동에 의해 갚음이 결정되는 것.
十一,「생(生)」- 미래의 생활.
十二, 노사(老死)」- 미래의 과보(果報).
의 열두 가지로서, 이 열두 가지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에 통하여 서로 인(因)이 되고 서로 과(果)가 된다고 설하셨다.
맨 처음의 무명(無明)을 수행(修行)의 힘으로 제거했을 때에 오도(悟道)의 인연이 작용 한다는 것이니,
「무명(無明)이 멸하면 곧 행(行)이 멸하고, 행이 멸하면 곧 식(識)이 멸하고, 식이 멸하면 곧 명색(名色)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면 곧 육입(六入)이 멸하고, 육입이 멸하면 곧 촉(觸)이 멸하고, 촉이 멸하면 곧 수(受)가 멸하고, 수가 멸하면 곧 애(愛)가 멸하고, 애가 멸하면 곧 취(取)가멸하고, 취가 멸하면 곧 유(有)가 멸하고, 유가 멸하면 곧 생(生)이 멸하고, 생이 멸하면 곧 노사(老死)의 우비고뇌(憂悲苦惱)가 멸하느니라.」(화성유품 一四八面)
고 설하셨다.
끝으로 보살(菩薩)에게는 생사의 바다를 건너는 수행(修行)으로
一. 보시 ; 남을 도와줄 것.
二. 지계 ; 도덕을 굳게 지킬 것.
三. 인욕 ; 어떤 고난도 참을 것.
四. 정진 ;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힐 것.
五. 선정 ; 一심으로 노력할 것.
六. 지혜 ; 미망(未忘)된 마음을 없이할 것.
의 여섯 가지를 들어 설하셨는데, 이것을「육바라밀(六바羅密)」이라고 한다.
바라밀이란,「건너편 언덕에 이른다.」다시 말하면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三승의 대중에게 각각 사성제(四聖제)와 십이인연(十二因緣)과 육바라밀(六바羅密)을 설하시어, 대중으로 하여금 괴로움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하려하신 것이 곧 四十二년 동안에 설하신 여러 경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행으로 괴로움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는 있지만 이로써 진실의 무상보리를 얻을 수는 없다. 진정한 정각(正覺)에 이르는 길은 한층 더 높은 교이니, 이것을「일불승도(一佛乘道)라고 하며, 법화경의 교의(敎義)가 바로 이것이다.
세존께서는 이 삼승의 교로 성문, 연각, 보살을 각각 따로 우선 괴로움의 세계에서 밖으로 이끌어내시어, 거기서 비로소 一승의 교에 태워 가지고 부처님의 세계에 이르게 하려하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三 승의 교는 一승의 교에 들어가게 하는 방편인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설하신 것이 저 유명한 비유품의「三界火宅)」또는「삼차대차(三車大車)」라는 비유의 설법이다.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어떤 나라에 한 사람의 큰 부자가 있어, 한없이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고, 어마어마하게 큰 집안에는 숱한 하인이 있었다. 또 많은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불이 일어나서 집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크게 놀란 부자는 아들들이 위태로움을 깨닫고「불이 났다 빨리 나오너라.」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아들들은 불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기뻐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불길은 차차 버져서 대들보가다 떨어지려했다. 부자는 어떻게 해서든지 아들을 구원해 내려고 이리 저리 궁리하다가 한 방편을 생각해냈다. 그는 아이들이 평소에 장난감을 가지고 싶어 하던 것을 생각하고,「얘들아, 너희들이 가지고 싶어 하던 양의 수레 사슴의 수레 소의 수레가 지금 문 밖에 있다. 빨리 나와서 좋은 것을 골라가져라 우물쭈물 하다가는 못가진다.」하였다. 이 말을 들은 아들들은 앞을 다투어 대문 밖으로 뛰어 나와,「아버지, 양의 수레는 어디 있습니까, 사슴의 수레는 어디 있습니까, 소의 수레는 어디 있습니까, 어서 주십시오.」하고 수레를 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아들들이 불속에서 나와 안전한 곳에 이른 것을 보고 안심했다. 그리고 아들들에게 준 수레는 양의 수레도 아니요, 사슴의 수레도 아니요, 소의 수레도 아니요, 휘황찬란하게 온갖 보물로 장식한 아주 크고도 아름다운 흰 소가 끄는 대백우차(大白牛車)였다. 뜻밖에 생각지 않았던 좋은 수레를 얻은 아들들의 기쁨은 비할 데 없이 컸다.
이 비유의 불난 집이란, 나고(生), 늙고(老) 병들고(病), 죽고(死)하는 따위의 괴로움이 가득 찬 현 세계를 지적함이요, 부자는 세존이시고 아들들은 중생을 가리킨 것이다.
세존께서는 우리 미혹한 중생을 괴로움의 세계에서 구원해 내시고자, 화재의 위험함을 알려주셨지만, 중생은 그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으므로, 하는 수없이
성문을 위해서는 사성제(四聖제)의 교를,
연각을 위해서는 십이인연(十二因緣)의 교를,
보살을 위해서는 육바라밀(六바羅密)의 교를 설하시어,
우선 그들로 하여금 괴로움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그런 다음에 다시 一승의 교로써 우리 중생을 다 함께 성불의 길로 인도하신 것이다.
양의 수레란 성문승(聲聞乘), 사슴의 수레란 연각승(緣覺乘), 소의 수레란 보살승(菩薩乘)을 비유하신 것으로서, 三승이 사람들이 각각 그 교에 의해 미혹의 세계, 괴로움의 세계에서 벗어나 나왔을 때,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신 대백우차야말로, 일불승(一佛乘)의 교 법화경의 교인 것이다.
세존께서 출세하신 본회는 이 一불승인 법화경으로써 중생을 인도하고 구원하고자 하신 것이었으나, 중생의 근기와 욕망이 구구하고 같지 아니하여, 一불승을 구하지도 않고 설해도 이해하지 못하는지라, 그래서 우선 성문연각 보살의 三승고로써 중생을 인도하신 것이다.
세존의 본회인 수자의(隨自意)의 교는 一불승의 법화경의 교 이외에는 없고, 三승의 교는 一불승 가운데서 꺼내어 설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三승은 방편의 교요, 오직 一승만이 진실의 교(敎)인 것이다.
이「일승은 진실이요, 삼승은 방편(一乘眞實三乘方便)」이라는 대사를 드러내 좋지 않으신 四十二년 동안의 교 그것은 방편이었고, 一승만이 진실이라고 밝히는 것을「개삼현일(開三賢一) : 三을 열어서 一을 나타낸다고 하여 법화경 전편 二十八품 중 방편품을 중심으로 한 절반 十四품을 적문법화경(迹門法華經)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시방불토(時方佛土) 가운데는 일승법(一乘法)만이 진실이요, 二승도 없고 三승도 없고 법화경 이외의 교는 모두 방편이며, 一불승인 법화경에 들어오도록 인도하는 교임이 분명하다.
이「개삼현일(開三顯一)」을 설하신 경문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으니,「처음 三승을 설하여 중생을 인도한 연후에 오로지 대승으로써 제도하며 해탈하게 함이라」(비유품 七七面)
「여래가 방편의 힘으로 一불승」을 분별하여 三승으로 설함이라.
「모든 부처님의 말씀은 허망함이 없느니라. 다른 법이 없고 오직 一불승만이 있을 뿐이니라.」(방편품 四○面)
「모든 부처님은 방편력을 가지고 분별하여 三승을 설하심이나 오직 一불승만이 있을 뿐이라」(화성유품 一七二面)
「十방세계를 두루 찾아 구할지라도 다시 다른 법은 없으리니」(비유품 八五面)
등등, 이밖에도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 합니다_()_
거룩한 부처님 법에 귀의 합니다_()_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 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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