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성문(聲聞)을 구하는 이에게는 네 가지 진리를 알맞게 말씀하셔 늙고 병들고 죽음을 벗어나서 궁극에는 열반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게 이제 불교에서 냉정하게 말하자면 초등학교 과정입니다. 네 가지 진리가 뭐죠? 사성도(四聖道), 사성제(四聖諦), 고집멸도(苦集滅道) 인생은 괴롭다. 그 괴로움은 원인이 있다. 이것 저것 다 모였기 때문에 괴로운거죠. 그러면 소멸해야지. 소멸할려면 방법이 있어야 될 것 아닌가? 팔정도(八正道) 이것이 방법이다. 이게 이제 가장~ 아주 초보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래 여기서 보면 성문을 구하는 네 가지 진리, 사성제를 이야기했다. 그래서 생노병사(生老病死)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랬습니다. 이게 이제 초등학생 수준이에요. 사성제, 팔정도 그거 초등학생 수준입니다.『법화경』에서는, 분명히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기사 그보다 더 뭐 그보다 더 이 불교에 들어가지 않는 내용도 많죠. 불교에 들어가지 않는 내용. 그걸 소위 인천인과교(人天因果敎)라. 그건 유치원 수준이라고 하는데, 인천인과교라 그렇게 하는데 뭐죠? 복을 구하는 사람, 승진을 구하는 사람, 합격을 구하는 사람, 매매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사람, 건강을 바라는 사람 그런 사람들도 다 와서 기도하면 성취됩니다. 그건 역시 불교라고 차원에는 들어가지는 않지마는 그러나 부처님께서 그러한 근기 따라서 또 수준 따라서 사람의 수준 따라서 또 그러한 법도 불교안에서 이렇게 펼쳐놓은 것입니다.
그 다음에 중등학교 수준은 뭐라고 하는고 하면은? 벽지불(辟支佛)이라고 이렇게 해서 연각(緣覺)이라고 하죠. 우리가
‘벽지불(辟支佛)을 구하는 이에게는 열 두 가지 인연을 알맞게 말씀하셨고’
그랬습니다. 십이인연(十二因緣) 그래서『반야심경』만 하더라도, 우리 불자님들이『반야심경』을 잘 외우고 계시니까『반야심경』에 근거해서 설명하면 아주 쉽습니다.『반야심경』에는 고집멸도라고 뭐라고 했죠?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 이랬습니다. 무고집멸도, 고집멸도 없다. 또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그런 말도 있지마는, 그 다음에 무무명(無無明) 역무무명진(亦無無明盡) 내지무노사(乃至無老死) 무명, 행, 식, 명색, 육근, 촉, 수, 취, 유, 생, 노사. 이게 십이인연이잖아요. 십이인연 없다 그랬습니다.
『반야심경』차원만해도, 그『법화경』차원보다도 훨씬 저 밑입니다. 밑인데도 그런거 없다. 그렇지마는 초등학교에서는 그런게 있다라고 했어요. 생노병사도 있고 고집멸도도 있고 십이인연도 있다. 이제 벽지불 차원에서는 십이인연을 가르쳤다. 그랬습니다. 고건 이제 사성제를 공부를 해서 조금 차원이 높아진 사람들에게 하면서 십이인연을 가르쳤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가르치는 내용 그대로에요.
또 그 다음에 세 번째, 이건 고등학교 수준입니다.
‘여러 보살들을 위해서는 여섯 가지 바라밀다를 알맞게 말씀하여 최상의 깨달음을 얻어 일체의 지혜를 이루게 하시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육바라밀(六波羅密)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육바라밀. 육바라밀은 자리이타(自利利他)가 겸해 있는데 보시, 지계, 인욕은 이타입니다. 그 다음에 정진, 선정, 지혜 이것은 자리입니다. 자기에게 이로운 것이죠. 자기에게 이로운 것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한다. 그야말로 자리이타, 남도 이롭게 하고 내 자신도 이롭게 하는 것. 그게 이제 보살의 지혜죠. 보살의 덕목입니다. 보살의 덕목은 두말할 것 없이 육바라밀입니다.
그래서 보살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육바라밀을 이야기했다. 연각의 길을, 인연의 이치를 우리 인연 이야기 많이 하죠. 연기(緣起), 공(空) 연기니 공이니 같은 길인데, 거기서는 연각에서 벽지불 소위 연각에서 공부하는 내용입니다. 공이라고 하는 것도, 공을 이야기하는 소위『반야심경』같은데서는 육바라밀을 이야기 못하고 있잖아요. 보살들에게 육바라밀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연기니 공이니 하는 이치도 상당히 우리가 이해하기가 어렵고 또 그것을 제대로 터득만하면은 우리 삶에 어마어마한 이익이 있습니다. 하지만은 냉정하게 우리가 경전을 앞에 놓고, 부처님이 설하신 경전을 앞에 놓고 거기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면은 사성제는 가장 초보적인 초등학교 수준의 수행방법이고, 연기니 십이인연이니 공이니 하는 것은 중등학교 수준의 수행이고, 그 다음에 육바라밀은 고등학교 수준 보살들이 실천하는 수준이다.
그럼『법화경』은 뭐냐? 『법화경』은 서두에서도 내가 말씀드렸고 앞으로 수천 번, 수만 번 말씀드릴 일이지마는‘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다. 온갖 탐진치 삼독과 팔만사천 번뇌를 가지고 있는 그 사실 그대로가 부처님이다.’라고 하는 이 차원이 바로『법화경』차원입니다. 거기에는 무슨 육바라밀 닦자. 공이 어떻다. 연기가 어떻다. 공을 실천해야 된다. 무슨 사성제를 닦자. 팔정도를 닦자. 이런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건 저~ 밑에서 초등학생이나 중등학생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부처면 다~지. 부처면 됐지 더 이상 딴 이야기가 뭐 필요하나 이거여. 그래서 끊임없이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 바로 이『법화경』입니다.
그래서 뭐 앞으로 나오겠지마는 별별 비유를 다 들죠. 예를 들어서 옛날에 거부장자의 아들이 어릴 때 우연히 길을 잃고 거리를 헤매다가 50년의 세월을 혼자 돌아다녔어. 거지로서, 그러다가 어느날 거부장자인 아버지 집에 이르러서 아버지를 만나게 됐어. 한 순간에 그 아버지가 이룩해놓은 어마어마한 재산을, 어마어마한 재산을 그대로 자기 재산으로 쓸 수 있게 됐다라는 이런 표현이라든지.
또는 또 어떤 거지가 있었는데 마침 친구는 어마어마한 부자라. 그래서 친구가 그 거지를 한 턱을 잘 먹였어. 그날 저녁에 잘 먹이고 술도 먹이고 그렇게 해서 곤히 잠들었을 때, 그 자기는 또 다른 공무로 멀리 이제 여행을 가야할 일이 있어서 그 사람 주머니에다가 무가보(無價寶) 그야말로 값으로 헤아릴 수 없는 어마어마한 보석을 말하자면 주머니에 넣어 줬어. 그런데 그 주머니를 차고도 끊임없이 이 사람은 거지행세를 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어느날 그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됐어.“이 사람아 어쩌다가 아직까지 그렇게 거지생활을 하느냐? 내가 그때 자네 만났을 때, 그 보석을 팔아서 큰~ 집도 사고 자가용도 사고 하인도 얼마든지 두고 떵떵 거리며 살 수 있는 그런 그 보석을 자기 주머니에 넣어줬는데 왜 그걸 가지고 있으면서 여태 거지로 사느냐?”내가 넣어준 주머니 어디 한 번 조사해보자. 보니까 아직도 그 보석이 주머니에 그대로 있더라는 사실.
이 무슨 뜻입니까? 거지인채, 거지인채 보석을 가지고 다닌다. 거부장자의 아들로서 거지생활을 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이 전부 우리는 현재 이대로, 지금 어떤 상황이든간에 이대로 우리는 정말 완전무결한 사람부처라고 하는 사실, 부처사람이라고 하는 사실. 사람부처요. 부처사람이라고 하는 이 사실을 명확히 우리가 이해하고 깨닫게 하는 것 이것이『법화경』의 종지(宗旨), 근본취지인데
그러니까 그러나 사람의 근기가 각각 다르고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석가모니 부처님도 또한 일월등명 부처님도 이렇게 수준에 따라서 사성제, 팔정도도 이야기하고 12인연도 이야기하고 6바라밀도 이야기했다. 이런 내용입니다.
그 다음에 보십시오.
‘다음에 또 부처님이 계시었으니 역시 이름이 일월등명이시고, 그 다음에 또 부처님이 계시었으니 역시 이름이 일월등명이셨습니다. 이와 같이 이만 부처님이 계시었는데 다같이 이름이 일월등명이셨고, 성도 똑같이 파라타(頗羅墮)이셨습니다. 미륵보살이여, 첫 부처님이나 나중 부처님이나 이름이 다 같아서 일월등명이시고 열 가지 명호가 구족하셨고, 말씀하시는 법문도 처음과 중간과 끝이 모두 훌륭하셨습니다.’
라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 처음 부처님도 일월등명이요. 중간 부처님도 일월등명이요. 전불후불(前佛後佛)이 다같이 일월등명이었다. 뭐라고 일월등명은? 깨달음의 지혜. 부처라고 하는 사실은 지혜를 뜻하는 것이다. 또 지혜라고 하니까 못알아들어서,“저 태양을 보아라.”아니 태양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돼?“저 달을 보아라.”달이 없을 때 또 어떻게?“저 등불을 보아라.”일월등(日月燈) 그것으로써 밝힌다 명(明)자, 밝을 명자. 이렇게까지 둔한 둔하디 둔한 우리 중생을 위해서 경전을 이렇게 고구정녕하게 낱낱이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이만(二萬)이 뭡니까? 둘이라고 하는 숫자, 상대적인거 아닙니까? 나와 너에요. 나와 너입니다. 이 세상엔 나있고 너있고, 상대적으로 이뤄져있어요. 너도 나도, 나도 너도 모두가 다같이 부처님이다. 지혜의 눈을 뜨고 보면 그대로 부처님이다. 이러한 이만이라고 하는 숫자가 바로 그런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이만 뭐할라고 이만이라 했겠어요? 아무리 많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등장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오로지 지혜를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첫 부처님이나 나중 부처님이 다같이 일월등명이다.’
‘전불후불(前佛後佛)이 개동일호(皆同一號)’똑같이 일월등명 지혜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자비의 종교 혹은 지혜의 종교 이런 표현을 합니다. 지혜와 자비의 종교입니다. 지혜를 먼저 터득하고 그 지혜에 의해서 자비의 실천을 하도록 하게 하는 종교가 바로 불교인 것입니다. 근데 그 단순히 지혜라고 하면은 뭐 얼른 그냥 짐작해버리고 또 자비라고 해도 그냥 적당히 짐작해버리고 말지마는, 그 지혜도 속속들이 우리가 공부를 하고 보면은 아주 참 무상심심미묘(無上甚深微妙)한 그러한 이치가 있고, 자비 또한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자비의 실천을 뭘 어떻게 해야 아주 훌륭한 자비의 실천이 될 것인가? 정말 자비중에서도 아주 고급 자비가 있다 말이야. 그냥 자비라고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자비의 실천도 명품 자비실천이 있는거에요. 그또한 부처님이 실천하신 내용과 연관시켜서 알아볼 일입니다.
해서 이 대목을 참 저는 중요하게 생각을 하고‘이만 부처님이 있었는데 모두가 일월등명이었다.’뭐 그렇게 이름 질 재주가 없어서 똑같이 이름을 이만 명이나 똑같은 이름을 그렇게 지었단말인가? 안그래요? 초등학생보고 이름 지어라 하더라도 열 개나 지을것인데, 어째서 일월등명이라고 한 이름을 이만 부처님에게다 짓는다 말이여? 이런거 사정없이 분석하고 따지고 파헤쳐서 우리는 경전이 우리에게 이해시키고자 하는 뜻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아 초등학생도 열 가지 이름도 더 짓고 백 가지 이름도 질 수 있는데, 어찌 그 소중한 부처님 이름을 똑같이 이만 명에게 같은 이름을 매긴다 말이냐? 기분 나쁘잖아요 이거.
옆 사람도 일월등명, 저 사람도 일월등명, 앞 사람도 일월등명, 뒤 사람도 일월등명 이거 뭐하는 짓이여 이게? 우리 중생의 보통 사람들의 상식으로 한 번 따져보기로 하면은 그러한 말이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참으로 심오한 뜻이 담겨있다는 거에요. 끊임없이 우리는 지혜를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이고 불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혜를 강조하는 것이여. 지혜만 있으면은 모든 문제 해결이라는 것입니다. 사실『법화경』의 열쇠는 여기 있어요. 여기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 나머지는 그 우리들의 신념을 좀 더 확고하게 해주는 그런 내용이라고 볼 수가 있어요.
저『금강경』여러분들 잘 아시죠?『금강경』에 보면은 그런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사물이나 무엇이 집착을 해가지고 생활한다. 몸을 움직이든지 아니면 보시행을 한다고 하면은‘여인입암(如人入暗) 즉무소견(則無所見)’그랬어요. 어떤 사람이 캄캄한데 들어가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 반대로‘여인유목(如人有目) 일광명조(日光明照) 견종종색(見種種色)’어떤 사람이 밝은 눈도 있고 日光明照 태양의 빛도 밝게 비친다. 그래서 모든 사물을 환하게 분별할 수가 있다. 그래서『금강경』에서 어두움의 세계와 밝음의 세계를 고렇게 아주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캄캄해 보십시오. 캄캄해 보십시오.여러분들이 여기까지 오실 수 있었겠어요? 또 지금 이 순간 뭐가 어찌 돼서 이 세상이 캄캄해진다고 합시다. 태양도 없어지고 달도 없어지고 전깃불도 없어진다고 합시다. 어떻게 되겠어요? 어딜 갈 수 있겠어요? 나간들, 집을 찾아간들 찾아갈 수가 있겠으며? 곳곳에 가다가 부딪히고 자빠지고 넘어져서 상처투성이 피투성이가 될 것이며, 집에 못돌아가요. 이 집에 못돌아간단 소리도 잘 이해해야 돼. 집에 못돌아간다. 집이 뭡니까? 도대체. 집에 못돌아가고 상처투성이, 피투성이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이와 같이 중요한 거에요. 아무튼 우리가 그동안 자의든지 타의든지 상처받고 살아온 우리 인생 되돌아보자면은 그것은 무조건 지혜가 없었다. 내가 어리석어서 그렇다 라고 이렇게 이해하면 틀림없습니다.“지혜가 없어서 그런게 아닌데요? 내 자식이 죽었기 때문에 내가 상처를 받았는데요.”할 말 없을거 같죠. 아닙니다. 부처님은 냉정하십니다. 설사 자식이 죽어서 상처받았다 하더라도 상처받는 것은 당신의 어리석음이다. 모든 사람이 다 자식잃었다고 상처받는건 아니다 말이여.
부처님은 석가족이 코살라국이라고 하는 이웃나라에 침범을 받아서 침범을 받아서 석가족이 다 살상을 당했어요.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고 살상을 당했습니다. 그길로 가비라성, 가비라성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역사상에서 그러나 인도역사에 사실은 다 기록돼있습니다. 그러한 것을 부처님은 다 보았어요. 두 눈으로 그것도 만 중생들이 부처님을 따르고 수많은 제자가 따르고 한 그때도 그 무렵에 가비라성이 사라졌습니다. 이웃 나라의 침범을 받아서, 그 사실을 두 눈으로 똑똑이 확인했어요.
그렇지만 뭐라고? 나는 그러한 사실을 보고『금강경』에서‘무아상(無我相), 무인상(無人相), 무중생상(無衆生相), 무수자상(無壽者相)호라.’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도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래서 아무런 그런 상처도 받지 않았다. 마치 그 모습은 절절지해(節節支解) 마디마디 칼로 오래내는듯한 그런 아픔이었지마는 그러나 상처로 남아있지는 않았다. 이런 표현이『금강경』에 있잖아요. 우리 불교의 소의경전
그렇습니다. 지혜가 그만치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결코 우리 인생에 있어서 제대로 지혜만 갖추고 산다면은 어떤 상황에서도 상처받을 일도 안하지마는, 외부로 의해서 외부에 의해서 상처받을 일이 있다손 치더라도 사실은 결코 상처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금강경』에 일광 유목 견종종색이라. 눈도 있고 햇빛도 비춰서 모든 사물을 환하게 비춰. 그러면 집에 돌아갈 때 차를 타고 가던지 걸어서 가던지 어떤 도구를 이용해서 가던지간에 상처받지 않고 다치지 않고 잘 돌아갈 수 있습니다. 왜냐? 눈이 있고 햇빛이 있어서 그래요. 그게 뭡니까? 지혜라는 뜻입니다.
우리 인생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도 지혜가 있으면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상처받지 않는다는 거에요.『금강경』에도 심지어 그런 표현이 있습니다. 요『법화경』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이만 부처님이 일월등명, 이만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셨는데도 똑같이 일월등명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말이야. 무슨 이름 지을 줄 몰라서도 그렇게 이름을 짓느냐? 거기에는 깊은 뜻이 있다. 부~디 불교를 만난 여러분들이여, 어떻게 하든지간에 지혜를 갈고 닦을 줄 알아라. 만약에 자신이 어떻게 할 바를 모르겠거든 부처님의 지혜의 가르침인 경전에서 지혜를 찾아라 그 말이야.『반야심경』이라도 한 번 외워보든지 아니면 잘 외우는『천수경』이라도 외워보든지 아니면『법화경』을 한 번 읽어보든지. 거기서 내가 부족한 지혜를 찾아서 어떻게 하든지 지혜로써 우리 인생을 잘 가꾸고 닦을 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메시지가 이 바로『법화경』에 이렇게 서두부터 담겨있습니다.
참 전불후불이 개동일호라. 앞에 부처나 뒤에 부처나 똑같이 일월등명이었다. 여기에는 참으로 엄청난 교훈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에
‘그 최후의 부처님이 출가하기 전에 여덟 왕자가 있었다.’
그랬어요. 최후 부처님 그 이만 일월등명 부처님 중에서 마지막 부처님, 여덟 왕자가 있었는데 그 최후의 왕자가 나중에 석가모니의 스승으로 이야기되어지는, 이제 이야기되어지는 이라고 이렇게 내가 아주 비밀을 털어놓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석가모니의 스승이라고 이야기되어지는 연등부처님이 바로 그 분인데, 그 분의 그 이야기가 나오고 그리고는 나중에 석가모니 부처님 이야기로 이렇게 돌아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 무수한 세월전에 지구가 천 번, 만 번 생기기 이전에, 지구의 역사는 육칠십억 년 밖에 안되니까 여기에 나온 년도수(年度數)는 지구의 역사보다 천 배, 만 배 더 길고 긴 세월이전에 일월등명 부처님이 계셨고 그리고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오늘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셨고 그리고 오늘날 2600년의 세월이 흘러서 오늘 이 순간 2012년에 우리는 이 시간을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게 무얼 뜻하는 것이냐? 지구가 뭐 60억년, 70억년전에 있었고 또 경전상에는 지구보다도 수천 배, 수만 배 더 오랜 세월을 이야기했다. 이것도 또한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시간성(時間性) 불교에 대한 시간의 문제, 공간의 문제도 이해해야 되겠지마는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시간의 문제. 흔히 우리가 외우고 있는 법성게‘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무량원겁(無量遠劫)이 즉일념(卽一念)’一念이란 말은 한 찰나, 한 순간입니다. 우리의 지금 이 순간은 과~ 과거 지구가 수천 번 생기기 이전의 과거에서부터 또 앞으로 지구가 수만 번 아니 수억만 번 반복한 그 이후까지의 우리의 이 순간 삶속에 내재되어 있다 하는 이 사실입니다.
여기에 이 종이가 역사가 얼마나 되겠어요? 이 책장의 역사를, 책만든지는 이 책이 한 뭐 10년남짓 됐습니다. 10년쯤 됐다. 종이로 보면 10년 더 됐다. 20년 잡읍시다. 근데 종이의 원료는 이제 나무입니다. 나무의 역사는 또 얼마나 됐겠어요? 나무 나이가 설사 50년이라고 치는데 그 50년된 나무의 그 원료의 나이, 물이라고 합시다. 공기라고 합시다. 공기와 물의 역사는 또 얼마나 됐겠어요?
저는 불상을 이야기할 때 그래요. 뭐 석조불상이 있는데 신라 때 불상이라고 해서 뭐 1200년된 석조 신라 때 만든 불상. 하~ 그래서 역사가 오래되었다. 그거 어떻게 불상이 글쎄 그 형태는 1200년 됐을지 모르지만 돌의 역사는 얼마나 되느냐? 한 번 생각해보자. 그 돌의 역사는 얼마나 되는지? 모~든 존재는요. 모든 존재는 금방 생겼다 사라지는 종이 한 장의 역사나 우리 인생나 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그 근원을 한 번 우리가 추적해본다면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길고 긴 세월이 그 속에 스며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지금 뭐 100세 시대라고 합니다마는 어디 100년 뿐이겠습니까? 불교의 안목으로 보면은『법화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이 지구의 천 배, 만 배의 역사보다도 더 오랠 것이고 또 앞으로도 또 천 배, 만 배의 그 길고 긴 역사보다도 더 오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형태는 아니겠죠. 형태는 바뀌겠죠. 형태는 달라져도 우리 본질의 역사는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들을 이 속에 다 담고 있어요.
그래서 이거 사실「서품」하나만 가지고 연구하고 분석하더라도 이건 몇 년 우리가 연구해야 할 그런 내용들입니다. 그 경전 읽으실 때 정말 이건 무슨 뜻일까? 이건 무슨 뜻일까? 그 섣불리 함부로 판단하지 마시고 그 깊고 깊은 오묘한 뜻을 공부해서 제대로 이해할려고 하는 그런 그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그 그 주보 끄트머리에 보면 ‘연등불이었다.’하는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38번 끝에 39번 위에 줄. 39번 위에 줄 한 번 보십시오. 거기에 보면 한자로
‘연등불(然燈佛) 이었습니다.’
있죠?‘맨 나중에 성불한 분의 이름이 연등불(然燈佛) 이었다.’
자 일월등명불이 이만 불이 나왔다. 한 부처님이 나오고 그 다음 부처님으로 이어지는 세월이 또 얼마였겠습니까? 그 앞에도 또 뭐 시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부처님으로 팔왕자가 있었는데, 팔왕자의 맨 마지막 성불한 사람의 이름이 연등불이었다. 이 연등불은 또 과거의 석가모니 부처님, 무수한 세월전의 석가모니 부처님 전신으로서 말하자면 스승이었다. 이런 내용을 우리는 전설처럼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보면은
‘묘광보살의 팔백 제자 중에 한 사람의 이름이 구명(求名)이었다.’
요 묘광보살이라고 하는 이는 문수보살을 뜻하는 것입니다. 역시 지혜를 뜻하는 것이죠.‘팔백 제자 중에 한 사람의 이름이 구명이었다.’이거 아주 재밌는 이야기죠. 구할 구(求)자, 이름 명(名)자. 이름 좋아한다 이거여. 이름 좋아한다. 이름 좋아하는 사람이다. 또
‘이양(利養)을 탐한다.’
그랬어요. 이익된거 뭐 자기에게 뭐 아주 좋은거, 利養을 탐하고, 또
‘여러 경전을 읽기는 하였지만 뜻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고 많이 잊어버리므로 구명이라 이름하였습니다.’
그랬어요. 우리도 이런 삶을 많이 살죠. 뭐 불교 좋긴 좋아요. 그래서 뭐 이런곳도 참 놀러 놀러가지도 않고 이렇게 나오시고 그러면 또 한 편 또 뭐 온갖 명예 좋아하고 돈 좋아하고 뭐 놀기 좋아하고 자기 칭찬해주면 좋고, 우리하고 똑같은 사람이 여기있어요. 그전에, 이름이 구명이었다. 이양을 탐하고 그리고 또 불교도 좋아해. 여러 경전을 읽긴 하였지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잘 모른다 이 말이여. 아무튼 장한 일이죠. 아무튼 장한 일입니다. 읽기만 하는 것도 얼마나 장한 일입니까? 그래서 구명(求名) 이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 사람도 선근(善根)을 심은 인연으로 한량없는 백 천 만 억의 수많은 부처님을 만나서 공양하고 공경하며, 존중하고 찬탄하였습니다.’
그랬습니다.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였습니다. 그런데
‘미륵보살이여, 그때의 묘광보살은 딴 사람이 아니라 곧 나 문수 문수보살이고, 그때 구명보살은 누구냐? 그대 미륵보살이었다.’
바로 앞에 앉혀놓고 앞에다 앉혀놓고“네 저기 구명 그때 그 구명이 바로 너야. 미륵보살 너야.”이렇게 이야기하는 대목입니다. 그때 아주 훌륭했던 그 묘광보살이 바로 나야. 이렇게 이야기하는 대목이죠. 이런 것들을 아주 읽을 때도요. 아주 눈앞에 선하고 실지로 눈앞에 그려가면서 읽어야할 그런 부분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미륵보살이 옛날에 이름 좋아하고 뭐 놀기 좋아하고 명예 좋아하고 이양(利養) 이로운거 좋아하고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미륵보살이 되었냐? 그리고 미륵보살은 누굽니까? 미래의 부처님아닙니까? 미륵불(彌勒佛) 석가모니 이후에 우리의 희망, 우리의 희망이 미륵보살입니다. 왜냐? 미래에 석가모니 다음에 부처가 되실 분으로 돼있으니까. 이러한 것들도 우리가 뜻으로 잘 이해해야 되는데, 이게 이제 말하자면 모든 불자, 불교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미륵보살은 미래에 부처로 화현(化現)하신 분이다. 그건 뭔고 하니? 우리들 마음속에 모두가 우리가 부처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인사도“성불하십시오.”“성불합시다.”라고 하는 것도 말하자면은 그 의미를 미륵보살이라고 하는 이름이 담겨있습니다. 우리의 미래에요. 우리 모든 불자의 미래가 미륵보살입니다.
그런데 그런 미륵보살이 어찌 그리 훌륭한 사람이 되었느냐? 그때는 그렇게 이름만 좋아하고 이로운 것 좋아하고 이익만 챙기고 그러던 사람이, 그리고 경전도 하나도 모르면서. 경전은 뭐 많이 읽긴 읽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넘기면서
이래 이제 내가 한 가지 재밌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내가 가끔 한‘콩나물 법문’이란게 있어요. 여러분들 콩나물은 물 한 번 줘보십시오. 물 쑥쑥 다 빠져버립니다. 콩나물 한 키워본 사람들은 잘 모르겠죠. 그런데 물이 빠지는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물을 줍니다. 주부들은, 계속 주고 주고 하다보면 한 일주일쯤 되면 상당히 부풀어요. 그리고 싹이 틉니다. 그래 좀 더 주면 이만치 자라요. 그 물은 다 빠져 버리는데 어찌하여 콩나물은 저렇게 자라는고? 바로 이것이 우리가 가는 길이고 이것이 미륵보살이 걸어간 길입니다.
처음에 경전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이해못한다 했어요. 이해못하지만 끊임없이 읽고 끊임없이 읽고 법회에 늘 오고 기도라고 하는 기도는 빠지지 않고 기를 쓰고 동참해 보는거야. 자꾸 그러다보면은 하나도 남는게 없어. 물은 다 빠져나간 콩나물 단지와 똑같애. 하지만 콩나물은 자라듯이, 우리의 지혜도 그런 과정을 통해서 무럭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라고 있다고 하는 이 사실입니다. 잘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딴거 다 잊어버리고 콩나물 법문 하나만 기억하세요.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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