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봉은법회지 내용을 중심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법화경』에는 28품이라고 하는, 요즘 말로 하면 28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 14품을 이제 말할 때 그것을 그 중에서 우리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방편품」을 제일 중요한 품으로 소위‘『법화경』의 안목이다’이렇게 이제 이야기해오고 후14품 중에서는「여래수량품」이라고 하는 내용을‘『법화경』의 안목이다’라고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동안 쭈욱 참석하셨던 분들은 뭐 대강 아시겠습니다마는『법화경』의 중심사상이 인불사상‘사람이 곧 부처님이다’라고 하는 그런 사상입니다. 그것을 좀 더 친근한 말로 저가 또‘당신은 부처님’이렇게 이제 표현을 합니다. 사람보고‘당신’이라고 하지 소나 말보고‘당신’이라고 하진 않을테니까,‘사람이 부처님입니다’라고 하는 말이나‘당신은 부처님’이라는 말이나 같습니다.
저가『당신은 부처님』이라고 하는 책을 써서 많이 보급하고 나니까 근래에 불교의 큰 행사에는 흔히 큰 현수막을 걸어서 장엄을 하는데 거기에‘당신은 부처님’이라고 이렇게 걸어놓고 오는 사람을 반기는데 그보다 더 좋은 인사는 없더라는 것입니다.‘당신은 부처님’오는 사람보고 난 사실 솔직하게 그렇게 ??한 사람도 아니고 뭐 가정에서조차도 크게 칭찬받는 사람이 아닌데 아이 절 행사에 오니까‘당신은 부처님’이라고 이렇게 해놨으니까 그보다 더 좋은 찬사는 없죠. 사람에 대한 최고의 찬사입니다.
그런데 어제 제가 여기 들어오니까‘부처님 오신 날 봉축행사’타이틀이‘부처님 오신 날 당신은 부처님’이렇게 걸려있더라구요. 제가 참 그동안 마음이 많이 젖어있었는데 어제 그 현수막을 보고 많이 밝아졌고 위안을 받았습니다. 제가 한 말이지마는 또 이 못난 나를 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보고“당신은 부처님”이라고 이렇게 나를 불러주니까 나에게도 부처의 씨앗이 있기는 좀 있는가 보다 하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불교의 가장 핵심되는 가르침은, 인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얼마나 제대로 이해할 것인가? 제대로 이해하고 그 이해한대로 스스로 살고 또 남도 그렇게 이해하게 하는 것 이겁니다. 그래서 그 이해한 수준이 어딘고 하면은? 부처라고 한 수준입니다. 부처의 수준으로 이해하려는 것이죠. 이러한 것을 부처님의 교설 중에서 밑받침하는 가장 핵심되는 경전이 바로『법화경』입니다. 그래서 선교율(禪敎律) 법회에도 다른 경전보다도 이 부처님 최후의 가르침 또 경중에 왕이라고 이렇게 평판이 나있는 이『법화경』을 가지고 하는 것이 불교를 가장 바르게 이해시키는 길이고 또 불교의 많은 가르침이 있어서 모두가 근기 따라서 별별 이야기가 많은데 이것은 더 이상 올라갈데 없는 가장 높은 가르침이다. 이것을 이해하고 못하고는 각자 몫이고 언젠가 이해할 날이 또 있으리라고 하는 그런 기대감에서 이렇게 법회를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 내일부터 이제 4월 초파일‘부처님 오신 날’행사 들어가는 내일 초하루고 어제는 또 서울에서 각 지방에서‘부처님 오신 날’을 기리는 전등행렬이 곳곳에서 펼쳐져서‘부처님 오신 날’기념을 하는 그런 그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습니다. 저도 참 모처럼 봉은사에서 이런『법화경』을 가지고 우리 불자님들과 함께 하고 있는데,‘부처님 오신 날’무엇을 선물하면 좋을까? 처음부터 이제 생각을 하다가 오늘 나눠드린『사람이 부처님이다』라고 하는 이 책을 가지고 결정을 해서 오늘 여러분들에게‘부처님 오신 날’초파일 선물로 이렇게 여러분들에게 드립니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이 책은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마는『법화경』이야기입니다. 무비스님의『법화경』이야기라고 이렇게 돼있습니다. 우리가『법화경』공부를 하면서『법화경』부분 부분을 공부를 하지마는 전체적으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사실『법화경』을 푸는 열쇠나 마찬가지입니다.『법화경』이 이 속에 다 담겨있진 않아요. 양이 한정이 돼있다보니까. 그래서『법화경』을 조금씩 조금씩 인용을 하면서 저 나름대로『법화경』에 대한 안목을 거기다 첨가한 그런 내용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침 제 시간에『법화경』을 공부하고 있는데, 이 책은 바로 제가 이야기하지 못한 좀 부족한 부분들이 이 책 속에 포함돼있습니다. 그러니까 꼭 이 책은 지니고 다니시면서 읽으셔서『법화경』을 좀 더 깊이 또 바르게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오늘 이 책은 저 혼자 욕심내가지고 시주를 할려고 했는데 또 어떤 신도님들이 신도님이 한 분이 계셔서 또 평소에 법공양을 아주 그 올리기를 좋아해가지고 그 신도님이 혼자 또 하시겠데요. 그래서 둘이서 싸우다가 (하하) 그러면 같이 하자 이렇게 이제 결론이 나가지고 그래 같이 하게 됐습니다. 저 혼자 한거 아니에요.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요는 우리가 얼마나 이 부처님의 높고 높은 이 가르침을 얼마나 가슴 깊이 이해하는가! 또 그 이해하는 것을 일상생활에서 가정에서 이웃에서 나와 인연있는 멀고 가까운 모든 사람들에게 얼마나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가 하는 것 뭐 이것이 ??하겠습니다. 마침 오늘 그 말씀드리고자하는「방편품」의 내용이 정말『법화경』의 핵심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또 이 책의 그 이름하고 잘 맞는 내용이라서 참 잘됐다 하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오늘 그 봉은법회지 한 번 펼쳐주십시오. 그 4쪽 41번, 41번 여기에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이 이제 경전에 있는 내용하고 똑같은데요. 경전을 가지고 계신 분도 내용이 같습니다. 여기에 아마 다시 입력하면서 착오가 없다면 똑같습니다. 이걸 한 번 한 단락 41번 한 단락을 읽고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같이 큰 소리로 우리 참 신심있는 불자님들 최근에 만나기가 그런데 큰 소리를 내서 우리가 경전을 한 번 읽음으로써 아주 축축한 마음 한 번 다 날려보냈으면 싶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러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사리에 공양하는 사람이 천 만 억의 탑을 세울 때 금과 은과 파리와 자거와 마노와 매괴와 유리와 진주 등으로 만들고 아름답고 훌륭한 장엄거리로써 찬란하게 탑을 꾸미며, 또는 석굴을 파서 불당을 짓기도 하고, 전단향과 침수향으로 짓기도 하고, 목밀(木밀) 나무나 다른 재목이나 벽돌이나 진흙으로 짓기도 하고, 넓은 벌판에 흙을 쌓아서 불당을 짓거나, 또는 아이들이 장난으로 모래를 쌓아 불탑을 만든다면 이런 사람들은 모두 이미 성불하였느니라.’
우리 불자님들께서 부처님과 인연을 맺고 이 정도 일에 동참하지 아니한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저 앞으로 나가면서 더 그러한 내용들이 나오는데‘넓은 벌판에 흙을 쌓아서 불당을 짓거나’우리는 뭐 흙 정도가 아닙니다. 불탑을 세우는데 아니면 절을 짓는데 등등 온갖 불사에 어디 다니면서 무슨 기왓장을 한 장, 서까래를 하나, 기둥 하나 크게 작게 다~ 그 나름대로 동참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동참했다고‘모두 이미 성불하였느니라’이런 이야기일까요? 불사에 동참했다고 모두 이미 성불하였느니라. 심지어 금방 우리가 읽은 내용 가운데‘아이들이 장난으로 모래를 쌓아 불탑을 만든다면 이러한 사람들은 모두 이미 성불하였느니라’이렇습니다.
아이들이요 불탑쌓을 때 어른들이 자꾸 불탑을 쌓으니까, 절도 짓고 불탑을 쌓으니까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뭡니까? 동네 아이들하고 나가서 저기 모래를 모아놓고 물을 떠다가 부어가지고 그걸 대충 뭉쳐가지고 여럿 봉긋하게 해놓곤 그것을 불탑(佛塔)이라고 합니다. 어른들 흉내내느라고 그런거죠. 심지어 주변에 물이 없으면요 아이들이 오줌을 쌉니다. 오줌을 싸가지고 그 모래를 뭉쳐가지고 그것을 봉긋하게 해놓고 그것을 불탑이라고 생각하고 합장도 하고 그렇게 장난을 칩니다. 어머니가 식사 때가 됐다 하고 멀리“누구야~”하고 부르면은 그 아이들이 쌓아놨던 불탑 그냥 헤쳐버립니다. 발로 지근지근 밟아서 헤쳐버리고 어머니가 부르는 곳으로 돌아옵니다. 이것이 아이들의 장난이에요.
그런데 뭐라고?‘이 모든 사람들은 이미 성불하였느니라’그랬습니다. 이건 애들이 불탑 쌓았다고 해서 성불했다는 소리 아닙니다.『법화경』은 최상승의 가르침 다시 말해서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내용, 그 내용을 어떻게 하면 쉽게 그리고 가장 정확하게 이해시킬것인가 이것이『법화경』을 앞에 둔 부처님의 숙제였습니다.
선가에 이런 그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이제 그 계현스님이라고 시골에 자그마한 암자에 주지를 하고 살았어요. 계현스님이라고, 그런데 그 스님 밑에 상좌가 신찬이라고 하는 상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신찬이라고 하는 상좌는 당신은 은사스님 밑에서 이런 저런 공부를 하다가‘불교가 이것만은 아니지’싶어가지고 몰래 은사스님 몰래 걸망을 지고 나와가지고 다른 지방으로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 백장스님 밑에 가서 공부를 하고 불교에 눈을 뜨고 다시 이제 은사스님에게로 돌아왔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오랜 세월이 아니었습니다. 한 2~3년 밖에 안걸린 그런 세월이었어요. 그래서 은사스님 계현스님은 보기에‘저놈이 무슨 중노릇하다가 바람이 좀 나서 돌아다니다가 왔는가 보다’그냥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은사스님이 이렇게 오늘같이 이렇게 따뜻한 날 목욕을 하고 있었어요. 그 젊은 상좌를 불러가지고“내 등을 좀 밀어달라.”그랬어요. 그래 이 신찬이라고 하는 도망갔다가 다시 돌아온 그 상좌가 은사스님의 등을 밀어줍니다. 등을 북북 이렇게 밀면서 그러다가 등을 툭툭 칩니다. 은사스님 등을 치면서“참 법당은 좋은데 부처님이 참 영험이 없구나.”(하하하)‘호호법당(好好法堂)이여 불무영험(佛無靈驗)이로다’한자로 하면 그렇습니다. 법당은 참 좋은데 부처님이 영험이 없구나. 그 참 이상한 이야기죠.
그러니까 이 은사스님이 가만히 들으니까 이상한 소리를 하거든, 뭔가 의미가 있는거 같기도 하고 또 자신을 놀리는거 같기도 하고‘부처님이 뭐 영험이 없다니 내가 뭐 이렇게 부족한가?’그런 생각을 하면서 놀란결에 뒤를 휙 돌아서 상좌의 얼굴을 한 번 쳐다봤습니다. 이 저저‘어디가서 무슨 짓을 하고 와서 이런 소리를 하는가?’하고 휙 돌아봤어요. 돌아보니까 그 다음 턱 던지는 말이“영험은 없는 부처가 방광은 하는구나!”(하하하) 영험없는 부처가 방광은 하는구나 했어요. 부처가 영험은 없는데 방광은 할 줄 안다. 광명은 놓을 줄 안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뭐라고 말하니까 반응한다는 뜻이죠. 반응한다. 우리가 부르면 돌아볼 수 있고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옆에 내 발을 누가 밟거나 하면은 신경질 낼 수 있습니다. 칭찬해주면은 기분이 좋습니다. 이 모두가 방광입니다. 이것이 전부 영험없는 부처이지마는 방광은 할 줄 아는 진정한 부처인거에요.
바로 그 점을 이『법화경』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선불교에서는 선불교의 표현합니다. 심지어『열반경』에는 광액도아라고 하는 이가 있습니다. 이마가 하도 소고기를 많이 먹어서, 소고기 장사를 많이 했으니까 하루에 소를 열 마리 이상씩 죽이고 그런 그 백정이란 뜻입니다. 이마가 번질번질하고 넙덕하고 번질번질한 그런 그 백정이 있었는데, 어느날 소를 잡는 칼을 도마에다 꽂으면서 꽂으니까 칼이 착 부르르르 떨릴거 아닙니까? 근사하죠? 그림이 싹 떠오르죠? 그러면서 큰 소리로“나도 천 부처님 중에 한 사람이다! 천불(千佛)의 일수(一首)다!”그랬어요.
나도 부처다. 아니 직접 그 순간까지 그러고도 또 고기를 썰고 고기를, 소를 잡을거야. 이 사람 직업이 소잡는 백정이니까. 그러면서 어느 한 순간 딱 아는거야. 소잡는 백정이 언제 참선했습니까? 염불했습니까? 기도했습니까? 아닙니다. 바로 고기잡을 줄 아는 그 능력, 그 사실이 부처의 능력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뭐라고 말하면 고개 돌려서 쳐다볼 줄 아는 그 능력, 그 사실을 여기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무슨 탑 쌓고 절 불사하고 모래 쌓아가지고 아이들이 탑이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수행이며 그게 무슨 공덕이 되겠습니까? 아무 공덕도 아니에요 그건. 공덕 쌓고 수행 쌓아서 부처된다는 것은 답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급불교, 저급불교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해요. 그래가지고는 이 불교 우리는“성불 성불 성불합시다 성불합시다 성불하십시오”불교의 최종목적은 성불에 있으면서도 답이 없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법화경』은 바로 이렇게 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걸 액면대로 읽어가지고는 몰라요. 그 안에 숨은 내용을 이렇게 우리가 이해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법화경』은‘부처님의 비요지장(秘要之藏)이다’이런 표현을 해요. 비밀하고 요긴한 가르침이다. 아주 비밀한 가르침이다 그랬어요. 그래 말만 가지고 무슨 뜻인지 모르는거라. 아는 사람은 그냥 아무 비밀도 아니죠. 모른 사람에게는 비밀이지. 그 순간까지 고기를 잡던, 소를 잡고 고기를 썰어서 팔던 그 백정도“나도 이 순간부터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나는 알았노라.”라고 하는 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불교는 이러한 것이 진정 불교다운 불교입니다. 그 사람이 그렇다고 그 순간부터 무슨 직업때려치고 할 사람은 아닙니다. 직업은 직업이에요. 소는 또 잡아야 됩니다. 하지만 소잡는 부처야. 소잡는 부처라. 좀 놀랍죠? 안 받아들여지죠. 소잡는 부처, 소잡는 부처.
만약에 만약에 그런 그 불교의 가르침이 없다면은 우리같이 못난 사람이나 여러분같이 일상생활, 세속에서 일상생활하는 사람은 어쩌란 말이요. 세세생생 부처될 그런 그 길이 없어. 다행히 광액도아같은 그런 사람들이, 눈 뜬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모두가 당당하게‘사람이 부처다’라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여기‘사람이 부처다’말 속에는 조건이 없는 사람입니다. 무슨 불교를 믿는다. 기독교를 믿는다. 이런 조건이 없습니다. 수행을 했다 하지 않았다 불교를 안다 모른다 이런 것도 없습니다. 그냥 사람이에요. 어떤 사람도, 사기꾼이나 도둑놈이나 뭐 세상에 아주 훌륭한 모범생이나 모두가 다 이 사람이라고 하는 말 속에 포함됩니다. 그도 부르면 대답할 수 있고 말하자면 해꼬지를 하면 화를 낼 수 있고 칭찬하면 기분 좋고 웃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부처인거요. 그러면 부처인 것입니다. 이게 불교의 궁극적 답입니다. 근데 이게 쉽게 이해가 안되죠.
그 다음에 42번 단락 함께 또 읽겠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부처님을 위해서 부처님의 형상을 조성하거나 불상의 여러 가지 모양들을 조각한 이들도 모두 이미 성불하였느니라. 칠보로 부처님의 형상을 조성하거나 황동이나 백동이나 함석이나 연이나 주석이나 철, 나무, 진흙으로 만들거나 아교나 옻칠과 천으로 불상을 조성한 이들도 이러한 여러 사람들은 모두 이미 성불하였느니라. 채색으로 복이 원만하게 장엄한 탱화를 만들 때 제가 스스로 하거나 남을 시켜 하더라도 이러한 이들 모두 이미 성불하였느니라. 어린아이들이 소꿉장난으로 나무 꼬챙이나 붓이나 또는 손가락이나 손톱 따위로 불상을 그린다 해도 이와 같은 이들이 점점 공덕을 쌓으며 큰 자비심을 갖추어서 모두 이미 성불하였느니라. 다만 여러 보살이 되어 한량없는 중생들을 제도하여 해탈케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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