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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예절 <2> - 대웅전에 들어갔을 때

원행화 2014. 5. 21. 21:16

 

불교예절 <2> - 대웅전에 들어갔을 때

 

 

 

이제 본격적으로 예절에 대해서 알아 둘 필요가 있겠다. 여기에서는 대웅전의 대표로 살펴보기로 한다. 그러니까 나머지의 다른 전각들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을 적용시키면 될 것이다.

 

1. 들어가는 방법

 

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알아두지 않으면 법당을 관리하는 할머니께 야단을 들을 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야단은 일단 부처님의 정문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했을 경우에 듣게 될 것이다. 다시 말씀드리면 일단 법당으로 들어갈 경우에는 좌우의 측면으로 기웃거려 봐야 한다. 그래서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간에 일단 열린 문이 있다면 그 문으로 들어가면 된다. 물론 문 앞에서 합장하고 허리를 한번 굽힌다면 금상첨화이다.

 

정문은 `어간문`이라고 부르는데, 부처님과 그 절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스님만 출입을 할 수가 있는 문이다. 그러니까 스님들도 함부로 출입을 하지 않는 문으로 속가의 사람들이 출입을 한다면 고지식한 법당 할머니가 그낭 보고 있을 턱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말을 들으면 시작부터 재수(?)가 없을 가능성이 많으니까 아예 이 정도는 상식 중에 왕상식으로 알아두시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만약 옆 쪽에 문이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는 정면의 옆문으로 출입을 하면 된다. 불교의 법이 어찌 생각하면 굉장히 딱딱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내부에 흐르고 있는 이치는 모두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감로사의 조립식 법당처럼 문이라고 생긴 것은 정문 하나 뿐이라면 그냥 그 문으로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이때는 어쩔 수가 없이 그대로 통하면 되는데, 문이 여러 개가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예의를 지키지 못하면 절법이 까다롭다고 탓하기 전에 자신의 무상식을 탓하는게 좋을 것이다.

 

2. 대웅전의 문턱을 넘을 적에

 

벗님은 그러한 기억이 없으신가 모르겠다. 어려서 문지방을 밟고 넘어가면 어르신들께서 야단을 치시던 경험 말이다. 이유야 어쨌거나 간에 일단 문지방을 밟는다는 것이 그렇게 금기시 되었다면 구태여 밟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문지방을 밟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시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선 다음에 그대로 본존불을 향해서 허리를 굽혀 예를 한 다음에 적당한 자리를 찾아서 깔고, 기본적으로 3번 절하면 된다.

 

3. 절하는 방법이 있다문서요...?

 

절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방법은 정성을 다해서 한다는 것이다. 그 나머지는 완전히 무시를 해도 좋다고 말하고 싶은 낭월이다. 원래 절에서 배울 적에는 오른 무릎이 어쩌고, 머리를 조아린 다음에는 두 손을 어쩌고... 하는 까다로운 방법을 익히느라고 고생 좀 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이러한 것들은 그야말로 허례허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냥 자신이 배운대로 하면 된다. 여기에서 배운대로라고 하는 것은 절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배운 것을 의미한다. 절은 어른에 대한 최상의 예의표시이다. 까다롭게 굴지 않아도 정성스럽게 하면 이쁘게 보이는 법이다.

 

요즘 낭월이는 언제 누구를 만나더라도 손바닥을 뒤집어서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 잘났다고 그러는 것은 아니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이렇게 하는 동안에 너무 챙겨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 홈페이지의 주제가 무엇인가?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가 아니던가. 그러니까 번거로운 것으로 인해서 정작 정성이 깃은 절을 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너무 허망한 일이라고 생각이 되어서이다.

 

처음에는 원칙대로 배운대로 하다가 어느 스님을 만나서 그 동작의 부당성에 대해서 한바탕 연설을 들었다. 과연 그 말씀이 일리가 있었는데, 그 후로는 원칙(?)은 무시해 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절의 형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결정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티벳트 스님들의 오체투지를 보고 나서였다.

 

합장을 하고 엎드리는가 싶었더니 완전히 엎어져서 배를 깔고 두 손을 머리위로 쭈욱~ 뻣어 버리는 모습을 테레비로 보고 나서는 구태어 형식에 매인다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음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구태여 원칙이라고 해서 배운 것을 버리라고 하지는 않는다. 각자 알아서 할 일인데 중요한 것은 바로 정성을 다해서 한다면 서서 하던지, 한 발을 들고 하던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어긋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래 가르침에 절을 하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아니, 적어도 그 방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그러한 모습은 아니었을 것은 확실하다고 본다.

 

4. 어디부터 절을 해야 할 것인가.

 

하긴... 워낙 대웅전에는 부처님만 계시는 것도 아니고 또 부처님이 주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한 분도 아니니 어디부터 해야 잘 했다고 소문이 나는 것은 고사하고 욕이라도 먹지 않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한다면 역시 고민이 되는 장면이라고 하겠다. 그렇지만 부처님이 한 분이든, 열 분이든 일단 기본적인 절은 세 번이면 충분하다고 알고 있으면 된다. 세 번이 기본이다.

 

세 번 해야 하는 이유

 

세 번 하는 것은 삼보에게 하는 절이다. 삼보라고 하는 것은 불법승(佛法僧)이라고 해서 부처님과 가르침과 스님들을 일러서 삼보라고 한다. 그래서 세 번 하라고 되어 있으므로 그렇게 하면 된다. 물론 한번 한다고 해서 잘 못 될 것은 없다. 다만 예의라고 하는 주제로 설명을 드리다 보니까 그렇게 말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부처님()이 계신 곳을 상단이라고 하는데, 상단에 절을 세 번 했으면 다음은 중단에 해야 한다. 중단은 일명 신중단이라고도 하는데, 신중단은 어디냐면 부처님이 계신 곳의 좌우 벽면을 바라다보면 아마도 칼이라던지 창을 들고 있는 장군 차림의 사람들이 수두룩하게 모여있는 탱화(그림)가 있다. 그 곳을 향해서도 세 번 하면 된다. 그 분들은 부처님은 아니지만 그래도 법당을 지킨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만한 대우를 받는 모양이다. 사회로 치면 대통령 경호실 쯤 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한 번을 해도 되겠지만, 기왕이면 세 번 정도는 하는게 좋겠다고 본다. 그리고 불자들은 관습적으로 일단 세 번이다.

 

아마도 원칙적인 구조의 대웅전이라고 한다면 이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어쩌면 영혼의 위패를 모셔 놓은 곳도 있을 수가 있겠으나 그런 곳에는 절을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하고 나서는 서서히 감상을 하면 된다. 부처님이 잘 생기셨는지, 법당의 단청은 얼마나 고색창연한지 등등 자신의 안목대로 감상을 하고서 달 둘러 봤다고 생각이 되면 밖으로 나오면 되는데, 역시 출구 앞에 다다라서는 부처님을 향해서 반절(합장하고 허리를 굽힘) 정도는 하는게 좋다. 그리고 나가면 된다. 일단 대웅전 참배는 끝이 난 것이다.

 

5. 기타의 전각들은 어떻게 할까.

 

대웅전만 있는 절도 있고, 다른 전각이 많은 절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천천히 돌아가면서 들리면 된다. 일단 특별히 법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대웅전 가까이에 있는 곳부터 이런 식으로 참배를 드리면 충분하다. 각 전각의 원리와 교리적인 이해가 필요한 경우에는 교리에 해당하는 곳으로 가면 설명이 되어 있다. 아직 없다면 앞으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답변이 없을 경우에는 불교상담 게시판으로 질문을 해도 좋다.

 

다 둘러보고 난 다음에는 절을 떠나면 되는데, 사천왕문 부근에서 절을 둘러보면서 다시 반절 정도의 예를 표하면 더욱 아름답다. 이렇게 하면 일반적으로 참배객으로써는 충분히 예의를 갖췄다고 보면 되겠다.

 

 

 

-출처 BUDDHA 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