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광큰스님(실상연화종 현광사)/석동광스님 묘법연화경 법문(현광사)

<무량의경 십공덕품 제삼①>무상보리를 증득할 수 있는 길 [불교교단 실상연화종 현광사 묘일 석동광스님 법화경(法華經) 해설]

원행화 2020. 3. 4. 22:22

<무량의경 십공덕품 제삼①>
무상보리 증득할 수 있는 길
 


[불교교단 실상연화종 현광사 석동광스님 법화경(法華經) 해설]


십공덕품

부처님가지고 계시는 열 가지 공덕 있는데,

불자들도 하면 부처님처럼 그러한 공덕얻는다이다.


“그 때 대장엄보살마하살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리되,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이 미묘하고도 심히 깊고 위없는 대승무량의경하시니,

진실로 심히 깊고 깊으옵나이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오면,

이 대중 가운데 모든 보살마하살과 모든 사중하늘·용·귀신·국왕·신민

모든 중생이 이 심히 깊고도 위없는 대승무량의경을 듣고 다라니문

세 가지 사과보리심을 얻지 아니한 사람이 없나이다.

 

문리진정하고 존귀함이 이보다 더 함이 없으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바이며,

여러 마구니와 여러 외도가 들어오지 못하며,

일체의 사견생사에 헐리어 무너지지 않음을 마땅히 알겠나이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오면,

한 번 들을지라도 능히 일체을 가지게 되는 고로

만일 중생이 이 을 얻어 들으면 곧 큰 이익이 되기 때문이옵나이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오면,

만일 능히 닦고 행하면

반드시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무상보리)이룩하여 얻기 때문이옵나이다.


중생이 얻어듣지를 못하면

이들은 큰 이익을 잃게 됨이니,

한량없고 가이없는 불가사의아승지겁을 지날지라도 결국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얻음을 이룩하지 못함을 마땅히 알겠나이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오면,

보리로 향하는 크고도 곧은 길 알지 못하는 까닭으로 험한 길을 지나가게 되며,

많은 환란에 머무르게 되기 때문이옵나이다.


세존이시여,

경전은 가히 생각하기도 어렵나이다.

오직 원컨대 세존께서는 널리 대중을 위하여

사랑애민으로 이 의 심히 깊은 부사의의 일을 펴시어 하시옵소서.


세존이시여,

경전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디로 가며, 어디로 가서 머무르나이까.

이와 같은 한량없는 공덕부사의의 힘이 있어 중생으로 하여금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룩하게 하시나이까.”


‘무량의경

다라니문세 가지 법 네 가지 를 얻고

보리심을 얻지 아니한 사람이 없다.’


이렇게 대장엄보살부처님 말씀을 드린다.


여기서 ‘다라니문’이란

모든 떠나선한 마음가지는 이다.


사람마음항상 불완전하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마음 나올 때도 있고, 악한 마음 나올 때도 있다.


그런데 문제

사람마음은 이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악한 마음 더 많이 나온다는데 있다.


선한 마음 나올 때는 아주 적게 된다. 

선한 마음끊임없이 나오고 악의 마음 떠나야 하는데

왜 그렇게 되지 않느냐 하면 바로 자기중심적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직 내 중심으로 생각해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 마음 생겨나질 않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대로 무시이래로 간직한 탐진치 때문에

자기한테 이익되는 바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것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이 악한 마음이다.


좋고 나쁘다 분별을 떠나서 나를 중심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모든 당면한 사물(事物)에 따라서 그 사물입장에서 판단을 했을 때

바른 행동 나오고, 함은 그런 곳에서 나올 수 있다.


내가 내 입장에서 내 주관적생각만을 가지고 판단하게 되면

결코 른 생각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상대이해하는 마음, 이것이 중요하다.


‘삼법’

난법(煖法), 정법(頂法), 인법(忍法)을 일컫는다.


일반적인 종교는 깊이가 없다.

초겨울이 되면 살얼음이 언다.

일반적종교는 그 살얼음불과하다.


그러나 불교는 실로 부처님께서 하시기를

중생근기에 따라서 낮은 곳에서부터 높은 가르침까지,


다시 말하면

근기낮은 사람에게는 아주 낮은 가르침 하시고,


근기조금 수성하면 또 조금 수성한 만큼의 가르침하고,


아주 높은 보살에게는 보살에 맞는 그러한 하신다.

그래서 불도에 들게 을 가르쳐 준다는 뜻이다.


사과(四果)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과 말한다.

수행결과로 얻는 경계단계를 나타낸 것이다.


문리(文理)진정(眞正)하고 존귀함이 이보다 더함 없다.’


‘무량의경’ 배우지 않으면 불도 들지 못한다이다.


아무리

 ‘화엄경’이나 ‘반야경’으로 많이 수행했다 할지라도

무량의경가르침듣지 않고서는 불도들 수 없다 말씀 이다.


무량억겁수행을 한다 해도

결국에는 이 을 배워야 만이 불도에 들 수 있다,

무량의경무상보리이룩하는데 가장 빠른 길이다,

하는 것을 나타내신 것이다.


그래서

여러 마구니외도들어오지 못하고,

일체사견생사무너지지 않는다.’

사견(邪見)분별할 줄 알아 결코 속지 않게 된다 이다.


요즈음

일부 스님 중에는 사견으로 하는 을 보고 듣는데

참 답답한 노릇이다.

그들이 중생을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 예로

‘문자를 멀리해라(不立文字).

’ 또 무슨 말을 하는가 하면

‘부처님조사들이 깨달은 바를 모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조사찬탄한다.’

것이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불교부처님가르침이다.


더구나

부처님께서는

 ‘삼세(과거현재 미래)모든 것을 다 보신다.’


하셨는데,


조사들이 한 그 화두 참선 하나 깨달은 것 모르셔서

“그런 도리 있었느냐? ”

그런 말씀을 하셨겠느냐? 이 것이다.

이런 것이 사견이다.


속히 무상보리이룩하여 얻기 때문에 이 들어야 한다.


‘속히’라는

빨리 한다는 뜻이 아니고, 한길, 하나의 길이라는 이다.

오직 한길수행함으로써 무상보리얻을 수 있다 이다.


그러면 그 한길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묘법연화경’ 들어가기 위해서는 오직 ‘한길’ 가야 된다는
이다.


무량의경

제대로 닦아야 법화경들 수 있다는것이다.


무량의경모르고 법화경에만 들게 되면

묘법연화경 다른 다 똑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보더라도 그 나름대로 “이 경이 최고다.” 라는 말씀 있기 때문이다.


묘법연화경에도

역시 “이 경이 최고다.” 라고 해놨으니까 다른 경하고 똑같다생각한다. 


한편

법화경 ‘다만 공덕은 수승하다.’ 이렇게 취급하고 만다.

다르게 말하자면 매도(罵倒)를 해 버린다.


“한량없고 가이없는 불가사의 아승지겁 지날지라도

결국무상보리이룩하지 못한다.”


인연과보나타낸 것이다.


화엄경반야경을 아무리 오래 한다 해도 무상보리 이룩하지 못한다 이 된다.


42년 동안 가르침으로서는

아무리 무량억겁수행한다 해도 무상보리이룩하지 못한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보리로 향하는 크고도 곧은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한길을 모르기 때문이라.

그래서 무량의경은 실로 생각하기도 어렵다.


“오직 원컨대 세존께서 이 대중 위하여 사랑 애민으로 이 경 심히 깊은

부사의 일을 펴서 설하시옵소서.”


하고 대장엄보살마하살이 모여 있는 대중을 대표하여 부처님간청하고 있는 것이다.


말씀 가운데는

 ‘묘법연화경 해 주십시오.’

하는 뜻들어 있음 알아야 한다.


‘한길 들어가는 그 길을 설해주십시오.’

하는 것이다.


한길목적지,

‘무상보리 증득할 수 있는 길 그것 열어 주십시오.’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험한길 지나가게 되며 많은 환란 머무르게 되기 때문이옵나이다.”


이처럼

인연 과보 하신 인데,

여기서 인(因) 수행으로,

수행하지 않으면 큰 이익잃게 된다 이고,

연(緣)가르침이 된다.


과(果)

무상보리를 이루는 것이고,


보(報)

무상보리를 이루게 됨으로써 일체이익되게 함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에게 이익되게 한다는 뜻이다.


부처님가르침을 가지고 수행하면

무상보리이룩해서 일체 세간출세간이익주게 된다 이 된다.









무량의경 십공덕품 제삼②

무량의경 첫째 공덕 부사의



세존이시여,

경전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디로 가며, 어디로 가서 머무르나이까.

이와 같은 한량없는 공덕부사의이 있어 중생으로 하여금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이룩하게 하시나이까.


그 때 세존께서 대장엄보살마하살에게 이르시되,

착하고 착하다. 선남자야, 이와 같고 이와 같음이니 네가 말한 바와 같음이라.


선남자야,

내가 이 함이 심히 깊고도 심히 깊으며 진실로 심히 깊음이라.


어찌하여 그러한가.

중생으로 하여금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룩하게 하려는 까닭이며,

한 번 들으면 능히 일체을 가지게 하는 까닭이며,

모든 중생에게 이익을 주려는 까닭이며,

크고도 곧은 길 가게 하여 환란에 머무름이 없게 하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야,

네가 이 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며, 어디로 가서 머무르는 것을 물었느냐.

마땅히 자세히 들으라.


선남자야,

은 본래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와서,

일체 중생보리심을 일으키는 데로 가고,

모든 보살이 행하는 처소머무름이라.


선남자야.

은 이와 같이 와서, 이와 같이 가고, 이와 같이 머무름이라.

이런 까닭으로 이 은 능히 이와 같은 한량없는 공덕부사의이 있어

중생으로 하여금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룩하게 하느니라.


선남자야,

너는 또 이 열 가지 부사의공덕이 있음을 듣고자 하느냐.

대장엄보살부처님 말씀드리되,

원컨대 즐겁게 듣고자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선남자야,

첫째

은 아직 발심하지 못한 보살에게 능히 보리심일으키게 하며, 

인자함이 없는 에게는 인자마음을 일으키게 하며,

살생을 즐기는 에게는 대비심을 일으키게 하며,

질투하는 에게는 따라 기뻐하는 마음 일으키게 하며,

애착이 있는 에게는 능히 버리는 마음 일으키게 하며,

모든 것 아끼고 탐내는 자에게는 보시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며,

교만함이 많은 에게는 지계마음을 일으키게 하며,

을 잘 내는 에게는 인욕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며,

게으른 자에게는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며,

모든 것에 산란에게는 선정마음을 일으키게 하며,

어리석음이 많은 에게는 지혜마음을 일으키게 하며,

아직 제도 안 된 자에게는 제도되려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며,

가지하는 에게는 열 가지 착한 마음 일으키게 하며,

즐기는 자에게는 무위마음하게 하며,

물러서려는 마음이 있는 에게는 물러서지 않는 마음 가지게 하며,

가 있는 자에게는 가 없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며,

번뇌가 많은 에게는 하여 없애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느니라.


선남자야,

이것이 이 첫째공덕이요, 부사의이니라.”


무량의경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서 머무르는 지를 대장엄보살이 질문을 하니

부처께서 답변을 하시기를,

“이 은 본래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와서,

일체 중생 보리심을 일으키는 데로 가고, 모든 보살하는 처소머문다.”

하신 것이다.


‘부처님 집’이란

일불승 ‘묘법연화경’ 뜻한다.


왜냐하면

“모든 여래가 이 (묘법연화경)에서 출세를 하느니라.”

부처님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묘법연화경이 되는 것이다.


‘일불승으로부터 와서 일체 중생들에게 보리심을 일으키게 해서

다시 일불승으로 들어 가게 하는 것

밝히신 것이다.


그래서

무량의경공부하지 않고서 법화경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이다.
묘법연화경진리라 하는 것이다.

진리우주하나밖에 없다.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그게 바로 부처님 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 에서 나와 가지고 많은 중생들에게

중생들이 보리심을 닦고자 하는,

부처가 되고자 하는,

부처지혜에 들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해서

무량의경을 닦아 가지고 바로 다시 부처님일불승 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팔만 사천 법문 팔만대장경은 어디서부터 왔느냐 하면

묘법연화경에서 나와 다시 묘법연화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원래 부처님 하나밖에 없다.

하나밖에 없는데 왜 그 수많은 했는가?

 

중생근기가 다 다르기 때문에 그걸 전부 다 말씀하시고자 하다 보니까

결국은 수많은 가르침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하신 목적이 어디 있는가?

그것으로 끝나는가? 아니다.

본래 하나에서 나왔기 때문에 다시 돌아 갈 곳은 하나밖에 없다.

본래 묘법연화경 하나밖에 없다.

진리묘법연화경이다 하는 것이다.


진리묘법연화경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수많은 하시고

난 다음에 다시 열반 드시기 에  8년간 ‘묘법연화경’ 하신 이다.


‘무량의경’

‘묘법연화경’ 들게 하기 위해서 하신 경[開經개경]이고,

무상보리 이룩할 수 있는 길 열어 주신 이기 때문에 소중하다는 것이다.

 
무량의경을 반드시 배우고 닦아야 우리는 공덕을 얻을 수 있다.

공덕환희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는 그런 경계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바르게 알아서 닦아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잘못 하고 있는지,

잘하고 있는 것인지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그래야 변해 갈 수 있다.


무량의경을 닦으면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된다.


경문에 있듯이

“교만함 있는 자에게는 지계 마음 일으키게 한다.”
교만 때문에 무상보리에 들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은 결코 무간지옥을 벗어날 길이 없다.

아무리 수행을 한다 해도 부처님부처님 가르침 자체부정해 버리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발심하지 못한 보살 능히 보리심 일으키게 한다.”

라고 한 부분은 무량의을 제대로만 배우면 전부 이 에 들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또,

“인자함 없는 자에게 인자한 마음 일으키게 한다.” 


을 생각하는 마음을 내지 못하면 인자함이 없는 사람이 된다.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을 내지 않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없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해서 매사를 이끌어 나가려고 하면 안 된다.


자신이 이나 행동

점검해서 잘잘못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갖지 못한다.


그래서 스님이 항상 하는 말이지만 

자기 자신은 ‘완벽하다’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하는 것이다.

절대 완벽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수행을 바르게 해 나감으로 인해서 거기서 부처님가르침이 어떤 뜻인가 

하는 것을 잘 배워가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참회하는 마음을 가졌을 때

비로소 바르게 되어 나가는 것이다.


아무리 자기 자신이 바르게 한다 해도 자기 주관에서 바른 것이지

3자 입장에서 보면 반드시 바른 것이 아님을 알아야 그런 사람이 완성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성 잘 내는 자에게는 인욕하는 마음 일으키게 한다.”


무량의경을 바르게 하면 을 내다가도

‘내가 무량의경을 공부하고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공부 안하는 사람은 그건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무조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데, 자기 성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 내가 아니로구나! 뭔가 잘못이다.’


또는

다른 사람 입장에서 자신을 보고,

자신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을 볼 때 바른 분별력이 생겨서 인욕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게으른 자에게는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한다.”


게으른 자는 이 공부를 하기 어렵다.

오늘 날도 추운데 하루 안 들으면 어떨까?

하루 절에 안 가면 어떨까?

자기 합리화 많이 하게 된다.


가끔 때에 절은 누더기 옷을 걸친 수행자를 보는데

어쩌면 철저한 무소유(無所有)를 실천하는 자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런데

수행자마음청정해야 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음청정하면 청정하게 되어 있기 마련이다.

비단옷을 입으란 것이 아니다.

자주 빨아 입으란 말이다.

몸에서 냄새가 나면 귀신도 싫어한다.

그래서 악귀가 침범하게 된다.

장애를 일으킨다는 말이다.

몸에서 냄새가 나기 때문에 수행자에게 마늘 같은 오채(五彩)를 먹지 말라 하는 것이다.


“산란한 자에게는 선정의 마음을 일으키게 한다.”


마음바른 곳 붙이지 못하는 사람 -

요것 해 볼까?

저것 해 볼까?

이게 나을까? 

저게 나을까?

요 철학관이 잘 보는가?

저 철학관이 잘 보는가?

저 스님이 뭐 좀 아는가?

이 스님이 아는가?

- 하는 것이 산란한 마음이다.


산란마음이 있으면 마음을 한곳에 두지 못하니까 공부가 안 된다.

문을 꼭 잠갔는가?

안 잠갔는가?

오만 생각 다 한다.

몸은 여기 앉아 있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으니 스님의 법문이 안 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무슨 공부가 되며, 무슨 선정에 들 수 있겠는가.


“어리석음이 많은 자에게 지혜 마음일으키게 한다.”


불교에 대해 잘못 이해했던 부분들이 다 어리석은 마음이다.

공부를 바르게 하면 아, 이게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처럼 지혜마음을 일으키게 된다.

 
“아직 제도 안 된 자에게는 제도되려는 마음일으키게 한다.”


법문마음을 열어놓고 듣고 ,

또는 우연히 법문을 한 번 딱 들었다 하면 그 사람은 제도 되어 있지 않지만,

그걸 받아 들였기 때문에 제도 되고자 하는 그 이 열린다. 

그러니까 내가 제도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다시 가서 공부를 해야지 하는 마음생겨난다.


“열 가지 행하는 자에게 열 가지 착한 마음일으키게 한다.”


천수경에 보면

십악(十惡)이 열거 되어 있는데. 열 가지 죄 십악이라 한다.


열 가지 악 하는 에게는 오히려 반대로 열 가지 착한 마음 일으킨다는 것이다. 


“유위(有爲) 즐기는 자에게는 무위(無爲) 마음하게 한다.”


있다 없다 하는데 집착해서는 안 된다 뜻이다.

특히

있다는데 집착을 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서 공부를 하다가

마구니 형상을 보면 그것이 진짜인 줄 알고 끌려가기 쉽다.


하지만

무량의경을 닦으면

‘아 이게 아니다.’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다.


“물러서려고 하는 자에게는 물러서지 않는 마음 가지게 한다.”


무량의경바르게 배우면

에서 물러나려 하지 않게 된다.

이 생겨서 자연히 마음굳건하게 되는 것이다.


스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셔도

‘저는 여기서 안 떠납니다.’

이런 마음이 생겨야 한다.

이런 마음이 없으면 바르게 배웠다고 말할 수 없다.


“누가 있는 자에게는 누가 없는 마음 일으키게 하며,

번뇌 많은 자에게는 하여 없애는 마음 일으키게 하느니라.”


번뇌‘누’ 비슷한 말인데,

을 바르게 열심히 수행하면 를 없애고 번뇌생기지 않는다 말씀이다.


자신돌아보지 않으면

결코 스스로 잘 못 되었다 하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자신이 이나 행동이 잘 못 되었다 하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잘 못 된 부분에 대해서는 스스로 참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행하지 않고자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것이

부처님부사의으로 무량의경수행하여 우리가 얻게 되는 첫 번째 공덕인 것이다. 







<무량의경 십공덕품 제삼③>

얼마나 좋고 신나고 즐거운 일인가 




“선남자야,

둘째

의 불가사의의 공덕이라 함은 만일 중생이 이 을 얻어

혹은 한 번이라도 혹은 게송 또는 구절을 들으면,

곧 능히 백천억의 에 통달해서 한량없는 수의 을 두고도 받아 가진 능히 연설하지 못하느니라.

어찌하여 그러한가.

의 뜻이 한량없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야,

비유하건대 이 하나종자에서 백천만이 나오며,

백천만의 하나하나 가운데서 다시 백천만의 수가 나오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전전해서 한량없음과 같이 이 경전도 또한 이와 같아 에서 백천이 나오며,

백천하나하나 가운데서 다시 백천만을 내나니,

이와 같이 전전해서 또 한량없고 가이없는 이 있음이라.


이런 까닭으로

이름무량의경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이것이 이 둘째공덕이요, 부사의이니라.”


하나하나에서 백천만억의 수없는 이 나온다 하셨다.

하나종자에서 백천만이 나오고, 백천만하나하나 가운데서

다시 또 백천만억가 다시 나온다 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바로 이 도 또한 에서 백천이 나온다고 하신 것이다.


이란

묘법연화경이다.

그 가운데는 로서 표현할 수 없는 그 이 들어 있다.

아무리 교묘하게 설명을 한다 해도 그 설명을 다 할 수 없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 곧 부처님 지혜로서 이 되는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것’

문구를 가지고 선(禪)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천칠백 공안을 내세워서

하나하나 조사화두를 깨쳐 나타내면 바로 거기에서 부처님

그런 도리가 있었느냐 고 하신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모르시는 경계가 있다는 것인데,

그야말로 사견 중에 사견이다.


우주 삼천대천세계대법왕이신 부처님께서 어찌 모르시는 것이 있겠는가. 

부처님지혜는 실로 무량하며, 이 무량이 이 에 다 들어 있다.

그래서 이 은 실로 부사의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래서

무량의경닦아 하는 것 두 번째 공덕된다 하신 것이다.

 
“선남자야,

셋째

불가사의공덕이라

만일 중생이 이 얻어들어 혹은 한 번이라도

혹은 한 게송 또는 한 구절 들으면,

백천만억 통달해서

비록 번뇌있을지라도 없음과 같으며,

생사에 나고 들고 할지라도 겁나고 두려운 생각이 없느니라.


모든 중생에게

불쌍히 생각하는 마음을 내며,

일체용건생각을 얻느니라.


억센 힘이 센 자가 있어 모든 무거운 것을 짊어지거나 능히 가짐과 같이

을 가지는 사람도 또한 이와 같아서 능히 무상보리의 무거운 보배

짊어지고 중생을 업고 생사에서 벗어나옴이라.


아직 스스로는 제도되지 못하였을지라도 능히 저들을 제도하리니,

오히려 뱃사공이 무거운 병에 결려 있어 팔과 다리가 자유롭지 못하여

이쪽 언덕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튼튼한 좋은 배와 건너는 도구 모두를 그들에게 주어서

떠나보내는 것과 같이 이 을 가지는 자도 또한 이와 같아서,

비록 다섯 가지 도의 모든 것이 있는 몸이 백팔의 무거운 병에 걸려 항상 서로 얽혀서

무명과 늙고 죽음의 언덕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견고한 이 대승무량의경

능히 중생제도하기 위하여 해 있으니,

함과 같이 하는 자는 나고 죽음에서 제도됨을 얻느니라.


선남자야,

이것이 이 셋째공덕이요, 부사의이니라.”


세 번째 공덕말씀하셨다.

한 구절 들으면 백만억통달해서 번뇌가 있을지라도 없음과 같다.

설사 번뇌가 있다 손 치더라도 이는 없는 것과 같다.
생사에 나고 들고 할지라도 결코 두려움이 없어진다.


중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다.

죽음고통이야말로 육체로써 어떠한 고통을 받는 것보다 고통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무량의경수행하면 생사에 나고 들고 하더라도 겁나고 두려운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르게 하면

죽음을 앞두고라도 결코 두려움도 없고,

많고 많은 이 몸뚱이를 버리는 것일 뿐,

에 들면 바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뜻이다.


무상보리라고 하는, 처님지혜 중생의 무거운 업보를 짊어지고

중생을 업고, 생사에서 벗어난다.

보배부처님지혜이며, 진실가르침이다.

가르침을 가지고 중생들에게 가르쳐서 중생들이 그 중생업보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뜻이다.


얼마나 좋고, 신나고 즐거운 일인가.

살아가는데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인상을 쓰고 있다 한들 누가 돈 갖다 주나?

또 아무리 내가 어렵다. 어렵다 한들, 겉으로는 공감하면서도 속으로는 도와 줄 수도 없는데

그런 소리하면 마음만 아프지 뭐! 이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무리 어려워도 어렵다 할 것이 아니라 묵묵히 다만 열심히 하면 된다.

열심히 살면 이 열린다.

믿음을 확실히 가지고 기도를 하면 반드시 먹고 살아갈 이 열린다.


욕심 때문에

자꾸 문제가 생겨나서 그렇지, 편안마음 가지고 생활하게 되면

기필코 이익이 반드시 기다리고 있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걱정 안하고 사는 것이 최고의 이익인데,

중생들에게는 그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믿음을 가지고 정말 지극하게 믿음을 가지고 바른 실천 했을 때는

반드시 가 되면 이익이 돌아오게 되어 있다.


우선 미워하는 마음 버리고 말조심해야 된다.

하고 싶어도 참을 줄 알아야 하고,

비방하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한 일에 대해서 잘했다 못했다 이런 을 함부로 해서도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모두 자기한테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뱃사공 얘기가 나와서 이야기하는데,

마음씨 착한 사람이 뱃사공을 하고 있는데, 돈을 못 받아.


말하자면

요새 일해 놓고 돈 달라는 소리를 못해 돈 못 받는 사람과 똑 같아.

뱃사공이 뭐 먹고 사나.

배 삯을 받아서 먹고 산다.

그런데 태워주기는 태워줘.

태워주는데 태워주고 나면 정해진 돈도 있는데 자기 멋대로 주고 싶은 대로 주고 가버려.

아예 안 주는 사람, 또 줘도 적게 주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이 뱃사공이 돈을 못 벌어.


근데 어느 날 스님이 턱 오니까, 아 그 뱃사공이 돈을 못 벌어서 먹고 사는 것도 어렵고 하니 초췌하거든.

그러니까 뱃사공의 마음을 알고,

어이 뱃사공 나를 저 건너까지 배를 태워 주겠소?

예 태워 드리죠.

내가 건너가면 뱃삯을 주겠소.

그래서 배를 탔다.

배를 건네주고 스님에게 돈을 달라니까 돈이 없다 하거든.

돈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

하니까

그 대신에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 뭡니까?

배 건너기 전에 미리 돈 받고 건너 주라고 가르쳐 주었다. 

평범한 말이다.


하지만

범부들은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이 맞았다.

강을 건네주고 삯을 달라하니까 그냥 가 버리고,

또 힘센 놈은 눈 부라리고 하니 무서워서 돈 달라는 소리 못하고,

이런 일이 많았다.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데도 그걸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작은 것이라도 그걸 예사롭게 보게 되면

늘 잊어버리고 넘어가게 된다.


작은 것 무슨 얘기냐 하면,

나는 대수롭지 않게 한 이 상대방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이다.


그래서

이라 하는 것은 내가 이 을 하게 되면 상대방이 고통을 받을까,

받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고 해야 되는 것이다.

 
중생들이

무량의경을 배워 가면서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면 반드시 이익이 온다는 이다.


“선남자야,

넷째불가사의공덕이라

만일 중생이 이 을 얻어들어 혹은 이라도 혹은 한 게송이나

또는 한 구절들으면 용건생각을 얻고,

비록 스스로 제도되지 못하였을지라도 능히 다른 사람을 제도하느니라.

모든 보살과 함께 권속이 되며,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항상 이 사람을 향해서 하심이라.

이 사람이 듣고 능히 다 받아 가지고 순히 따라 거역하지 아니하고,

다시 사람을 위하여 당연함을 따라 널리 함이라.


선남자야,

이 사람은 비유하건대 국왕부인에게서 새로이 왕자를 낳음과 같음이라.

혹은 하루 혹은 이틀 혹은 이레에 이르거나,

혹은 한 달 혹은 두 달 혹은 일곱 달에 이르며,

혹은 한 살 혹은 두 살 혹은 일곱 살이 됨이라.

비록 나라의 일을 맡아서 다스리지 못할지라도

신하와 백성에게 이미 숭상과 공경을 받게 되며,

모든 대왕의 아들과 같이 짝을 짓게 되느니라.

부인과 사랑하는 마음이 치우쳐서 항상 같이 하리니 어찌하여 그러한가.

어리고 작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야,

을 가지는 자도 또한 이와 같아서 모든 부처님국왕이요,

부인이라. 화합해서 같이 이 보살아들을 낳음이라.



만일

보살이 이 을 얻어들어 혹은 한 구절 혹은 한 게송이라도

혹은 한 번 하고, 혹은 두 번 하고, 혹은 열, 백, 천, 만

혹은 억만 항하사 같이 한량없고 수없이 하면

비록 진리궁극체득하지 못하고,

비록 삼천대천국토진동하고

우레와 같은 범음으로 법륜을 전하지 못할지라도

일체의 사중팔부존경추앙을 받으며,

모든 큰 보살들이 권속이 됨이라.


깊이 모든 부처님의 비밀의 에 들어서 하는 바는

가히 어김이 없고 틀림이 없으며,

항상 모든 부처님께서 호념하시며 자애로 두루 덮어 주시리니,

이는 새로 배우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야,

이것이 이 넷째공덕이요, 부사의이니라.”


무량의경 법화경개경(開經)이다.

법화경에 들어가고자 하면 반드시 이 무량의경을 닦고 배워야 한다.

을 닦고 배움으로 해서 열 가지 부사의공덕을 얻는다고 하셨다.

그중에서 이 네 번째 공덕은 실로 하다.


성불하여 하시면 육종진동, 여섯 갈래로 진동을 한다.

오색 빛이 하늘에서 비추고, 각종 하늘 악구가 울리고,

또 각종 꽃이 부처님 위를 덮고, 을 듣는 대중들 위에도 흩날린다.

그러한 신력은 없을지라도,

은 없을지라도 이 하는 사람은 일체 천용팔부공경을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하는 사람만 공덕이 있느냐?

그렇지 않다.

찬탄하는 사람, 설법함을 듣고 찬탄하고,

또 듣게 하는 사람도 공덕이 같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중생이 이 을 얻어들어 혹은 한 번이라도 혹은 한 게송이나 또는 한 구절 들으면

용건생각을 얻고

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용건한 생각을 얻는다

하는 것은 용건상얻는다이다.


, 다른 사람을 미혹한 그 마음에서 벗어나 해 주는 공덕이 바로 용건상이다.

그래서 미혹사람도 그 미혹마음에서 벗어나 해 주는 공덕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어려움이나 고통, 또는 이 온다 하더라도 반드시 극복을 하고

바른 수행 해서 보리증득하고자 하는 그 마음관철시키리라 하는 굳은 결심이

용건상이다.

반드시 내가 바른 수행 해서 부처님지혜에 들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심을 말한다.


또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네 번째 공덕 자기 자신의 미혹마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더라도

용건마음, 반드시 부처님지혜에 들겠다는 이런 굳은 결심 가졌을 때

, 그 결심을 가지고 열심히 수행을 해서 설법을 함으로써 남을 제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스님도 아직 완전히 부처님지혜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이 믿음확실하고,

또 반드시 많은 중생을 이 으로 인도해서 다 같이 성불 시키겠다 하는

굳은 신념확고하기 때문에 곧 법문을 듣는 여러분들도 나와 같이

현재는 그렇더라도 반드시 부처님 지혜에 들 수 있다 하는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을 미혹마음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도록

구원하고자 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노력하게 되면

반드시 보살권속이 된다고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스님이 아무리 좋은 법문을 한다 하더라도

여러분들이 마음을 열어 놓지 않고

으로만 앉아 있다고 할 것 같으면

나와 같이 될 수가 없고,

또한 부처님 지혜에 들어 갈 수가 없다.

마음을 활짝 열어 놓고 들으면

모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어 소견이 넓어진다.


그러나

마음을 닫아 놓은 상태, 를 닫아 놓으면 소견이 좁아진다.

그래서 부처님가르침마음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마음에 들어와야 내 마음에 있는 보이지 않는 불성부처님 말씀 자체하나가 된다.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공덕이 현실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생각을 해 보자.

밖에 가 떠 있으면 밝다.

에도 달이 뜨면 확 밝아진다.

아무리 가 떠 있고, 둥근 이 떠 있다 치더라도

창문을 닫아 버리고 두꺼운 커튼을 다 내려 버리면 밖에 햇빛과 달빛이 들어오지 못한다.


마음이라는 것이 바로 그와 같다.

아무리 좋은 가르침이 있다 한들

를 열어 놓지 않은 상태,

마음을 열어 놓지 않은 상태에서는 열성적으로 바르게 설법 해 준들 마음 안에 들어가지 않으니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견이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음을 열어 놓고, 자기 성품을 바꾸려고 노력을 해야 된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성품의 나쁜 점을 잘 모른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성품인가?

남을 존중하는 성품인가?

정말 다른 사람의 말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이런 것들을 자기 스스로 돌아 볼 줄 알아야 한다.

자기를 돌아 볼 줄 모르니까 자기 집착을 해서,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태양이 아무리 밝게 떠 있은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니까 누에고치처럼 자기 틀에 갇혀 가지고 고통을 받게 된다.

자기 자신의 욕망자존심으로 인해서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게 된다.

자존심 내세우는 사람치고 마음바른 사람 드물다.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부처님께서 지금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바른 마음 가지면 네 번째 공덕 얻는다 하는 것이다.

자기라 하는 그 자체생각을 하지 말고,

공부하는 시간에는 정말 마음를 열어 놓고 듣고서 밖에서는 실천해 나가야 된다.


실천은 전혀 하지도 않고, 앉아서 좋다 좋다 찬탄만 하고 있으면 공덕이 적다.

찬탄하는 만큼 내가 실천을 해야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부처님경계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이 굳게 서야 된다.

심지가 굳어야 된다.


그래야

부처님가르침하는 사람이 부처님은 아니더라도

부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직접 가르침하고 계신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때에 따라서

스님이 쭉 설명을 하다가 갑자기 어떤 생각이 생겨 이야기해 주게 된다.

그 때는 그것이 부처님 말씀이라,

생각지도 않았던,

실지로 듣는 입장에서도 아주 평범한 이야기 같지만 전혀 다른 세계의 말씀으로 듣게 된다.

그래서 바로 아 부처님께서 나에게 해 주시는구나.

스님은 많이 느끼고 깨닫고 있다.


듣고 능히 다 받아 가지고 순히 따라 거역하지 아니하고


이 말씀은

부처님가르침진실하게 받아 가지고 진실하게 지켜나가면서

부처님가르침을 거역하지 않는다.


그래야만 진정불자가 된다는 것이다.


근래에 어떤 스님이 말하기를

어느 조사(祖師)스님이 화두를 들고 화두를 깨닫는 것을

부처님이 보시고 묻기를

그런 도리도 있었는가.’

라고 물으셨다는 것이다.

이건 이 안 되는 말이다.

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교만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다.

부처님가르침 거역한다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옳은 불자가 아니다.

어떠한 일이 있다 해도 자기 사견이 들어가면 안 된다.

부처님삼세과거 현재 미래 다 아시는 분인데,

생명 하나하나의 성품욕망을 다 아시는데,

참선하여 화두 작은 것 하나 깨달은 것을 부처님이 모르시겠는가.


그야말로

사견이 하늘을 찌르는 자, 그런 자들을 파순이라고 말씀하셨다.


행동을 멋대로 하다 보니까 교만마음이 생긴다.

말법에는 그런 자들이 바닷가 모래알과 같이 많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경우라도

사견(邪見)해서는 네 번째 공덕얻을 수 없다.


선남자야,

다섯째

불가사의공덕이라 함은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혹은 부처님이 세상에 계시거나 혹은 멸도하신 후에

이와 같은 심히 깊고 위없는 대승무량의경받아 가져 읽고 외우고 옮겨쓰면,

이 사람이 비록 여러 가지 번뇌에 얽혀서 모든 범부의 일을 멀리 떠나지 못했을지라도

능히 큰 보리도를 보이고 나타내어 하루를 늘여서 백겁으로 하며,

백겁을 또한 능히 줄여서 하루로 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환희하고 신복하게 하느니라.


선남자야,

이 선남자 선여인은 비유하건대

아들이 비록 낳은 지 칠 일 되어도

곧 능히 구름을 일으키고 또한 능히 내림과 같음이라.


선남자야,

이것이 이 다섯째공덕이요, 부사의이니라.

아들을 하나 낳았다. 그 자식이 일주일만 되면 신통을 부린다.

그렇게 신통을 부림과 같은 공덕을 얻는다고 하셨다.


다시 말하면

무량의경하는 사람이 스스로 자기 자신이 범부 중생으로서

마음미혹을 완전히 끊지 못했다 하더라도

대보살이 하는 일을 스스로 한다는 것은 범부이지만

보살경지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항상 부처님펴고자 하는

그러한 보살마음으로 하면서 보살를 나타내고,

세상의 많은 사람에게 이익 되게 하기 때문에 보살경지에 오른 사람이 된다.

을 듣는 여러분들은 믿음을 가지고 실행을 하면 바로 이익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다섯 번째 공덕이다






<무량의경 십공덕품 제삼④>

홀연히 얻고 회향하리라



선남자야,

여섯째불가사의공덕이라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혹은 부처님이 세상에 계시거나 혹은 멸도하신 후에

경전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는 자 비록 번뇌를 갖추고 있을지라도

중생을 위하여 해서 번뇌 생사 멀리 떠나게 하여 일체를 끊게 하느니라.


중생이 듣고서 닦고 하여

을 얻고,

를 얻고,

를 얻어서

부처님 여래 더불어 차별이 없음이라.


비유하건대

왕자가 비록 어리고 작을지라도

혹은 이 멀리 떠나거나 또는 병이 있으면

왕자에게 맡겨서 나라을 다스리게 함과 같음이라.

왕자

 때 대왕의 명에 의하여 과 같이 모든 백관을 가르치며,

을 내려서 바른 으로 선포하매 국토의 인민이 각각 그 요긴함을 따르되

대왕이 다스림과 같이 하여 다름이 없느니라.


을 가진 선남자 선여인도

또한 이와 같아 혹은 부처님이 세상에 계시거나

혹은 멸도하신 후 이 선남자가 비록 초부동지에 머무름을 얻지 못했을지라도

부처님의지하여 이와 같은 교법을 쓰고 하여 이를 널리 펴느니라.


중생이 듣고 일심으로 닦고 하여

번뇌를 제하여 끊고

을 얻고,

를 얻고,

를 얻게 되느니라.


선남자야,

이것이 이 여섯째 공덕이요, 부사의이니라.

공덕이야 말로 우리 불자들이 다 받아야 된다.

법화경 공부하는 불자들은 다 받게 되어 있다.

범부 중생으로서는 대승가르침을 배운다 해서

미혹함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


설사

미혹마음이 있더라도 부처님가르침을 열심히 배우고

수행함으로 해서 지혜가 생겨나고 을 갖추게 된다 하는 것이다.


지혜을 갖추어야만 많은 사람들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다.

지혜을 갖추게 됨으로 해서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을 끊을 수 있도록

부처님가르침하고 가르쳐서 인도할 수 있다 하는 것이다.


부처님가르침한다 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하는 것을

나타내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배우고 닦아 나가면 그 공덕이 남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이 됨으로 해서 점차로 부처님경지에 가까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경문을 보면
초부동지를 얻는다 했다.

화엄경에 다른 사람을 가르쳐서 이롭게 하는 사람을 열 등급으로 나누어서 가르침이 있다.


이것을

십지(十地)라고 한다.

오십이위 중에서 십지라고 하는데 초부동지라 하는 것은 초지를 말한다.

십지 중에 초지에 든 것과 같다.

이 얼마나 공덕입니까? 

어느 을 보더라도 이러한 공덕을 말씀하신 것이 없다.

선남자야,

일곱째

불가사의공덕이라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부처님이 세상에 계시거나 혹은 멸도하신 후

을 얻어듣고 환희하고 믿고 즐겨희유마음을 내어

받아 가져서 읽고 외우고 옮겨 쓰고 해설하고,

과 같이 하며 보리심을 발하여 모든 선근을 일으키고,

대비마음을 일으켜서 일체 고뇌중생제도하고자 하면,

비록 육바라밀을 얻어 닦고 하지 못하였을지라도

육바라밀이 스스로 앞에 나타나 곧 무생법인을 얻고

생사 번뇌 일시에 끊고 칠지 대보살 계위에 오르느니라.


비유하건대

힘센 사람이 을 위해 원수를 제하여 원수가 멸하면

이 크게 환희해서 을 주되,

나라모든 것 나누어 주는 것과 같음이라.


을 가지는 남자와 여인도 또한 이와 같아

모든 수행하는 사람 중에서 가장 용맹하고 굳건함이니,

육바라밀 법보를 구하지 아니하여도 스스로 이르느니라.


생사원적이 자연히 흩어져 무너지고,

부처님 나라보배의 반인 무생인증득하여 을 받고 안락함이라.


선남자야,

이것이 이 일곱째공덕이요, 부사의이니라.

무량의경 설법을 듣고 먼저 즐거움을 느낀다.

즐거울 수밖에 없다.

여태껏 몰랐던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42년 동안방편가르침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에 들어오니까. 실로 42년 동안 하신 방편이라고 말씀하시고,

진실하시겠다고 하시니, 참말로 좋다. 환희심이 느껴진다.


그러나

교만들은 은 다 똑같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것은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말이다.


믿고자 하는 마음이 없이 그냥 믿는다 하는 생각만 가지고는

이런 공덕을 얻을 수 없다.

반드시 믿고자 하면 실천이 따라야 한다.


생각만 가지고 있게 되면 진실이 오래 가지 못하고,

믿는 마음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마음으로 기뻐하며 즐겁게 생각하고 굳게 믿는 마음이 중단 되어서는 안 되고

지속적이 되어야 한다.


내 기분에 맞는다고 해서 조금 믿고,

맞지 않는다고 해서 손놓고 하는 이런 이 아니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그런 마음이 생겨나야 한다.

귀의하고자 하는 마음생겨나야 한다.


그러면

실천하고자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실천하는 것은

수지 독 송 해설 서사인데

이렇게 수행하는 오종법사(五種法師)라 한다.


수지(受持)라 함은

가진다으로 을,

부처님말씀을 받아서 손에 가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는다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을 말한다.

으로 을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으로 뱉어 내는 것이다.

부처님가르침 자체를 입으로 뱉어 내는 것이다.

이것이 가진다(수지)는 것이다.


수지행오종 중에서 제일 주인이 되는 것인데,

제목(묘법연화경)부르는 이다.


이처럼

부처님가르침실천하게 되면

반드시 보리심을 일으키게 된다.


부처님지혜를 갖고자 하는 마음보리심이다.

여기서 모든 선근을 일으킨다.


이라는 것은

부처님 마음인데 을 하는 것의 근본마음이다.

따라서

부처님마음을 닮아 가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실천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면

칠지(七地)에 오른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칠지원행지가 되는데 이것을 얻는다.


원행지

소승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부처님가르침해서 이익 되게 하는 경계다.


그래서

부처님과 같은 마음이 되어 가는 경지에 이르게 하는 것.

이것이 원행지다.

또한 그렇게 되면 육바라밀을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육바라밀현존한다.

내 앞에 나타난다.


육바라밀이란

보시 지계 인욕 선정 정진 지혜여섯 가지 실행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보살행인 것이다.

공덕을 얻은 는 이미 보살인 것이다.

선남자야,

여덟째

불가사의공덕이라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부처님이 세상에 계시거나 혹은 멸도하신 후에

사람이 능히 이 경전을 얻은 이가 있거든

공경하고 믿기부처님친견함과 같이 다름이 없게 하며,

을 사랑하고 즐거이 받아 가져 읽고 외우고 옮겨 쓰고

머리에 이고 과 같이 받들어 하며,

계행인욕을 견고히 하고 겸하여 보시해서 깊이 자비를 일으켜,

이 위없는 대승무량의경을 널리 사람을 위하여 할지니라.


만일 사람이 예로부터 이제까지 도무지 복이 있음을 믿지 않는 자에게

을 보이고,

가지가지의 방편을 지어 굳세게 교화해서 그로 하여금 믿게 할지니라.


위력이 있는 연고로 그 사람이 마음을 일으켜 홀연히 얻고 회향하리라.


이미 신심을 일으키면 용맹정진하는 고로

능히 이 위덕과 세력을 얻어 를 얻고 를 얻느니라.


이런 까닭으로

선남자 선여인이 교화를 입는 공덕으로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곧 무생법인을 얻어 상지에 이르게 되고,

모든 보살과 함께 권속이 되어 능히 중생을 속히 성취시켜서

부처님국토를 깨끗이 하고 오래지 않아서 무상보리를 얻어 이룩하느니라.


선남자야,

이것이 이 여덟째 공덕이요, 불가사의이니라.

을 보는 것만으로도 부처님친견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생각하고 공경하면서 믿고 받아가지는 것

경전 가운데 부처님전신이 있다 하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을 가지면

부처님이 나와 지금 한 몸이 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보시하는 마음을 일으키라 하셨는데,

물질적으로 보시하는 것도 큰 공덕이지만

으로 인도하는 공덕이야 말로 더 크다고 하시는 것이다.


중생들을 구원 받게 하는 것이 되고,

에 들어오면 중생들은 반드시 구제를 받기 때문이다.

이것이 참다운 보시이다.  


부처님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반드시 보시를 하게 되어 있다.

말로만 감사합니다. 하는 것보다 내가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공덕이 되는 것이다.


물질적으로 보시하는 것은 한정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집 팔아 보시하는 사람 없고,

잘 방도 없이 몽땅 전세금 갖고 부처님보시하는 사람 없다.

옛날에는 집 팔아 보시 했다.

요새 사람들은 자기 먹고 살기 바빠서 절대 안 한다.


그런데

에 들면,

자꾸 이 법문듣게 되면 내가 좋다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깨닫게 되었을 때는 주머니에 손이 저절로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마음에서 울어나는 진정보시가 된다.

바르게 믿으면 이처럼 보시도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을 이 인도하는 것이 왜 큰 공덕을 짓는 것이 되느냐 하면

이 끊어 지지 않고 연결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을 듣게 되면 좋은 걸 알게 되고,

그러면 또 사람을 데리고 오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덕이 크다 하는 것이다.


부처님가르침바르게 전하면서 교화하게 되면

교화하는 사람이나

처님교화받는 사람

점차로 부처님경지에 이르게 되는 공덕여덟 번째 공덕 되는 것이다.






<무량의경 십공덕품 제삼⑤>

무량의경의 불가의한 공덕


선남자야,

아홉째

불가사의공덕이라 함은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혹은 부처님이 세상에 계시거나

혹은 멸도하신 후 이 을 얻어 환희하고 기뻐 뛰며 미증유를 얻어서

받아 가져 읽고 외우고 옮겨 쓰고 공양하며,

널리 여러 사람을 위하여 이 분별하여 해설하는

전세업장과 다른 죄의 무거운 장애가 일시에 다 멸함을 얻느니라.


청정함을 얻고 속히 큰 변론을 얻어,

점차 모든 바라밀장엄하고,

모든 삼매수능엄삼매를 얻어 큰 총지문에 들어서 부지런히 정진을 얻고,

속히 상지를 넘어서 능히 을 나누어 널리 시방국토에 흩어져서

일체 이십오유의 극히 괴로운 중생을 빼내어 제도해서 해탈을 얻게 하느니라.


이런 까닭으로 이와 같은 이 있느니라.


선남자야,

이것이 이 아홉째공덕이요, 불가사의이니라.

수능엄진실하고 조금의 결점도 없는 행동인데,

완전무결한 행동으로써 부처님일치되는 것이다.

행동이 삐딱하거나 잘못함이 조금도 없다는 뜻이다.


수능엄삼매를 얻음으로 해서 총지문에 들어간다 하셨다.

총지문은 모든 한 것으로 을 멈추게 하는 이다.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감동을 주고,

악한 것을 멈추게 해서 한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바로 총지문이다.


중생들은 바르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선하게 산다’

함은 무조건 없이 산다는 것이 아니다.

남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부처님가르침으로써

부처님마음과 같이 되고자 하는 그것이 곧 바른 것이다.


범부라 하는 이 중생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나 행동으로 를 짓는다.

행동으로써 를 지으면서 정작 자기 자신 가 되는지도 모른다.

한마디도 가 된다는 것을 생각지 않고

에서 나오는 대로 거침없이 뱉어 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스님이 평상시에 늘 하는 말이

‘한번 생각 하고, 두 번 생각하고 말 하라,

누가 옳은 말 해주고, 가르쳐 주면 그것 좋은 것으로 받아 들여라,

나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라’

고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어떤가도 모르면서 남이 요긴한 이야기,

정말 좋은 이야기를 해줘도 돌아서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비유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을 배우는 사람은 설사 기분 나쁜 말을 듣더라도

아 그것 나한테 약이다.

원래 약은 쓰다.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들었을 때 곧 과 악한 마음이 멈춰버린다.

그러면 자기 공덕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일체 이십오유 극히 괴로운 중생 빼낸다.”
 

‘이십오유’

욕계 ․ 색계 ․ 무색계 삼계(三界)라 하는데,

삼계25가지 세계나눈 것 말한다.


욕계

세분하면 14계 있고,


색계는

 7가지,


무색계

4개 세계가 있다.


14개, 7개, 4개하면 25 가지세계가 된다.


욕계(欲界)

중생들이 사는 세상 말한다.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는 육체욕망이 있는 세계인데 14 가지 분류한다.

14가지 가운데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세계가 있다.

이것을 4악취 한다.

거기다 수미산를 중심으로 동 서 남 북 각각 한 나라 있는데 그것4주 한다.


남쪽에 있는

남섬부주라 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를 말한다.


육욕천이라 하는 것은

욕망을 버리지 못한 자가 천상계에서 가지게 되는 그러한 6가지 생활을 말한다.

타화천,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제천 그것이다.


4악취, 4주, 6욕천더하면 14계 세계가 된다.

그렇게 욕계를 이루고 있다.


색계(色界)
청정물질로 된 세계이다.


색계

욕계상방, 무색계 하방,

욕계무색계중간에 있는 세계색계다.


색계

육체가지고 있지만 남녀 구분 없다.

욕망있지마는 욕망을 끊어 버리는 그러한 천인세계다.


천인들은 광명먹고 산다.

부처님법문먹고 산다.

부처님마음같다.

그들은 부처님먹고 사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천도재 할 때 법문들려주는 것이다.


색계에는

대범천, 사선천, 무상천, 오정거천 있는데 하여 7가지 중생계된다.


사선천세분화하여 4군데 하늘 땅 말한다.

여기서 제일 높은 곳 유정천이다.

색구경천이라고도 한다.

유정천을 지나면 비로소 무색계(無色界) 들어간다.


색계무색계에는 번뇌를 끊어 버리는 좌선 관법으로써 들어갈 수 있다.

선정에 들어서 번뇌를 없이 할 수 있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우리는 바로 무색계에 들어갈 수 있다.


무색계물질초월세계이다.

은 없고 마음만으로 살아가는 정신세계를 말한다.


무색계

천상계에서 최상부 최고 높은 곳이다.

공무변처 ․ 식무변처 ․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

이렇게 4가지 세계 나눈다.


무소유(無所有)

무색계무소유처에 들고자 하는 경계이다.
출가자무소유마음가져야 한다.


소유욕을 가지게 되면

무소유처, 무색계 들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스님들은 소유를 꺼린다.


불법을 제대로 알게 되면

바로 소유를 하지 않는다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육체무색계에 들어가면 아무 의미가 없다.

따라서 육체라 하는 것은 살아가는데 하나도구인 것이다.


부처가 되기 위한, 깨달음을 얻기 위한 하나도구일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을 멈추고, 행해야 한다.


하게 되면 바로 중생제도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해탈을 얻게 해야 한다.

이러한 으로 공덕이 생겨서 번뇌를 완전히 끊어 버린 세계에 들게 되는데,

이것을 무색계라 한다.


무량의경을 받아 가져 하면

바로 무색계에 있는 것과 같은 공덕이 갖추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홉 번째 공덕이다.

선남자야,

열째 불가사의공덕이라 함은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혹은 부처님이 세상에 계시거나

혹은 멸도하신 후에 만일 이 을 얻고서 큰 환희를 일으키며 희유 마음을 내어

스스로 받아 가져 읽고 외우고 옮겨 쓰고 공양하며

함과 같이 하며, 

 또는 널리 재가이거나 출가한 사람을 권하여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옮겨 쓰고 공양하고 해설하며

과 같아 닦고 하게 하면,

이미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을 닦고 하도록 한 연고를 얻고 를 얻느니라.


이 선남자 선여인이 자비로운 마음으로 부지런히 교화하는 으로 인하여,

이 선남자 선여인은 곧 에 한량없는 모든 다라니문을 속히 얻느니라.


범부지에서 자연히 처음부터 수가 없는 아승지의 넓고 큰 서원을 능히 일으키고,

히 일체 중생을 구하려는 마음을 깊이 일으켜 대비성취하고,

능히 널리 여러 가지의 를 뽑아 많은 선근을 모아서 일체요익하게 하느니라.
더욱 윤택함을 하여 널리 목마름을 적시며,

여러 의 약으로써 모든 중생에게 보시하여 일체안락하게 하고,

점차로 초연히 올라가서 법운지에 머무름을 보느니라.


은혜를 널리 적시어 자비에서 빠지는 사람이 없고,

괴로운 중생을 이끌어 의 자취를 밟아 들어가게 함이라.


이런 까닭으로

이 사람은 오래지 아니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룩하여 얻느니라.


선남자야,

이것이 이 열째공덕이요, 불가사의이니라.

열 번째 공덕에서

우리는 한 사람을 으로 인도하는 공덕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실마음으로서 이 을 고마움으로 공경하고 공양하고

또 받아 가지고 수행을 하면

반드시 부처님깨달음을 이루게 되는 공덕을 갖게 된다 하는 것이다.


반드시 굳건한 마음으로써 믿음을 확실하게 세워 함으로써

부처님깨달음을 얻게 된다.


믿음이 없는 사람도 바른 말 바른 행동으로 진실마음을 가지고

인도하려고 하면 반드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도가 된다.

따라서 공덕도 분명하다.

자기 자신은 비록 깨달음이 적어 미심쩍어도,

부처님 말씀이니 남을 인도했을 때 곧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얻어진다.

이것이 열 번째 공덕이다.


처님께서 위와 같이 열 가지 공덕 하시는 말씀을 듣고,

대장엄 보살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후에

무량의경유포해서 모든 중생들이 다 받아 가져서

읽고 외우고 옮겨 쓰도록 하고, 공양하겠다고 부처님맹세를 한다.


부처님께서 대장엄보살에게

“선남자야, 착하고 착하도다”

라고 칭찬하신다.

또한 보살한 바와 같이 하면

그는 곧 진실부처님자식이라고 말씀하신다.

“중생 고통 뽑아 버리고,

중생 좋은 복밭 되어서 항상 법 이치로써 은혜 베풀어

중생들이 부처님의 법에 귀의하도록 하라.”

하고 부처님께서 대장엄보살에게 부촉말씀을 하시는 것으로

무량의경을 마치게 된다.


부처님께서는하게 되면 곧 그가 복밭이라고 하셨다.

복밭으로 인해 듣고, 실천하고자 믿음을 가지고 귀의하는

복밭공덕으로 인해서 똑 같이 부처님지혜에 들게 된다는 것이다.

끝으로 다시 요약하면

무량의경부처님을 나타낸 덕행품설법품, 10공덕품으로

구성되어 있는 으로 묘법연화경을 여는 개경(開經)역할을 한다.


설법품에서 42년 동안

모두 방편이었음을 나타내심으로써 에도 우열이 있음을 밝히셨다.

그것은 묘법연화경이 바로 진실한 임을 드러내신 것이다.


무량의경을 알아야 묘법연화경에 바르게 들 수 있기 때문에

무량의경을 받아 가져서 하는 불자

열 가지 공덕 얻는다십공덕품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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實相 妙法蓮華經   實相 妙法蓮華經   南無 平等大慧 實相妙法蓮華經 _()()()_